말 그대로 잡문집이었다.

라고 정의할 수도 있을 법한 책이다. 하지만 ‘잡문’이라는 단어가 좀 가볍다는 느낌인지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 책은 잡문집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느낌만큼 가벼운 소재로만 가공된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때 그때 하루키님이 필요에 따라 정하기도 하고 소재를 제공받기도 하면서 쓴, 그야말로 딱 한가지로 뭐라 정의할 수 없는 글들의 모음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꽤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이 책을 선정했다. 예전에 읽었던 ‘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같은 류의 방방 뜨는 에세이를 기대하고 빌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용은 뭐랄까 에세이보다는 서평 등이 주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가벼운 실망감을 느껴야 했다. 뭐 하지만 이 책 나름대로 즐거운 독서를 만들어 주었지만.

더군다나 애초에 예전에도 그 에세이집, ‘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와 겹치는 내용이 꽤 많을 것이란 말도 안되는 착각으로 두려움에 떨며 빌리지 않았던 적도 있지 않은가. 지금의 가벼운 실망감은 오히려 적반하장이지.

하지만 이 책은 하루키 류의 그 특유의 유머감을 잃지 않고 있다. 뭔가를 예로 들어 가볍게 설명해 나가는 방식이라던가 원래의 내용과는 조금 엇나가는 듯한 느낌을 풍기면서 원래의 주제를 벗어나지 않는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같은 방식 같은 것들이 그러하다. 아무튼 그렇다고 해도 묵직한 느낌이지만, 그런 소소한 즐거움에 작게 미소 짓게 되는 그런 글들이었다.

한번에 쭉 읽어 내려가는 것은 이런 책에 대한 모독이겠지만, 나는 대체로 그런 독서 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에 이 책 역시 내용의 분량에 비해 손에 집는 횟수는 적었다. 그게 아마도 무라카미 하루키님에게는 불만이겠지만, 그래도 다 읽었잖아요?

내일 반납일이라 후루룩 국수 먹듯이 읽은 건 별로 자랑이 아닐테지. 더군다나 지금이 시험 기간이라는 것도 별로 자랑이 아니고.

아무튼 완독.

다음으로 읽을 건 시험 끝나고 생각해 봐야겠다. 라고 말하지만, 과연 내일 아무 책도 안 빌리고 도서관에서 나올 수 있을까. 하는 게 내 본심이다.

아래는 가장 첫장을 장식하고 있는 자기란 무엇인가 의 글이다.

소설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대체로 늘 이런 대답을 한다. “소설가란 많은 것을 관찰하고, 판단은 조금만 내리는 일을 생업으로 삼는 인간입니다”라고. … 잘 아시겠지만, 소설가가(귀찮아서 혹은 단순히 자기 과시를 위해) 그 권리를 독자에게 넘기지 않고 자기가 직접 매사를 이래저래 판단하기 시작하면, 소설은 일단 따분해진다. 깊이가 사라지고 어휘가 자연스러운 빛을 잃어 이야기가 제대로 옴짝하지 못한다.

음, 내 글의 문제를 쪽집개로 뽁 뽑아 올린 듯한 해답이라 순간 짜릿해졌었다. 나는 자기 과시를 위해서 매사를 이래저래 판단해 왔던 것 같다. 라고 강하게 느꼈다. 뭐, 아무튼 즐거운 독서였다. 다음 책은? 시험 기간 끝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