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마술은 속삭인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지 ‘글을 적었다’라는 이유만으로 믿고 볼 수 있는 작가는 단 하나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충성도는 다소 떨어지겠지만, 그렇다곤 해도 내 마음속에서 순위를 매기자면 1위가 되는 작가, 이영도님. 정말로 무슨 글을 쓰든 나에게 있어서는 몰입도 떨어지는 일도 없었고 책의 마침표까지 완벽히 훑었을 때 후회도 없었다.
얼마 전에 중고 서점에서 눈물을 마시는 새 1권과 피를 마시는 새 1권, 그리고 마술은 속삭인다를 구매했다. 구매하고 눈물을 마시는 새 1권을 완독하고(눈물을 마시는 새는 이미 모두 읽었기 때문에 딱히 독후감을 써야겠다는 의무감을 느낄 수 없었다.) 다음으로 집어든 마술은 속삭인다. 이 책의 첫 장을 넘기기가 무섭게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나에게 있어서 ‘글을 적었다’라는 이유만으로 믿고 볼 수 있는 작가가 한 명 더 늘어나 있었다는 사실을.
사실 ‘마술은 속삭인다.’ 이 책은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단지 미야베 미유키님이 글을 적었다는 이유만으로 손쉽게 집어 올려 구매한 책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구매한 미야베 미유키님의 책이기도 하고. 아무튼 항상 책을 구매할 때는 수도 없이 고민을 하다가 사는 나의 특성을 기반으로 생각하자면 상당히 유쾌하고 단순한 구매 양상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놀랍게도 그렇게 이 책을 구매했다.
그리고 전혀 후회하지 않았다.
사실 놀랄 부분은 이 부분이겠지. ‘아무런 생각 없이 책을 구매했을 때’에는 여지없이 조금이라도 후회를 하곤 했었는데 이 책은 전혀 후회할 여지가 없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긴 후에는 오히려 이 책을 구매한 나에게 감사함까지 느꼈다.
그리고 이 책은 나에게 특별함이 되었다. 드디어 나도 미야베 미유키님의 책을 한 권 소유하게 되었다.
아무튼 감동은 여기까지. 미야베 미유키님의 이름은 이렇게나 내 속에서 가치를 가지게 된 것이다. 라는 것이 결론.
스토리를 이야기해 보자.
미야베 미유키님의 소설은, 이제 꽤 많이 읽었다고 생각되지만, 아무래도 종잡을 수가 없다. 보통은 두 가지 사건이 동시에 전개되고 책의 말미가 되기 전까지는 도통 사건의 양상을 판단할 수 없게 스토리를 이끌고 가기 때문이다. 이 책 역시 그런 느낌이었다.
자, 그럼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줄거리.
횡령 후 소리 없이 사라진 아버지로 인해 피해를 받은 소년 마모루는 어머니를 잃고 이모 집으로 옮겨 살게 되는데 이모부가 택시 사고로 여성 한 명을 사고사 시킴으로써 이 책은 시작한다. 마모루는 이 전말을 파헤치기 위해 여러가지 증거들을 따라가게 되는데, 중후반이 되어서 이모부를 위해 파란 불이었다는 증언을 해주는 사람이 나타난다. 그 사람과 마모루와의 관계 역시 주목할만한 것이 되는데, 이건 일단 미래의 나를 위해 숨겨두고. 마모루는 말만으로 의식을 심을 수 있다는 ‘누군가’의 협박으로 두려움에 떨며 그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그리고 마모루가 일하는 곳에서의 갑작스러운 몇 명의 발작에 대한 조사 등, 아무튼 많은 사건들이 어우러져서 복합적인 효과를 낸다.
글이 더러워지기 시작하는데, 대충 끝마치자면, 조금은 비현실적인 도구인 최면이 큰 사건의 틀이 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어색함이 없었던 것은 미유키님의 글솜씨 때문이겠지.
마지막에는 ‘누군가’가 건네주는 선택권으로 인해 심적 갈등을 겪는 마모루의 이야기가 주축을 이루는데, 이것 역시 상당히 흥미롭다. 그의 선택이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증이 책장을 빨리 빨리 넘기게 만든다.
아, 여기까지 적고 나니 안도의 한숨이 쉬어진다. 쉴 새 없이 열심히 달리고 달려서 결국 꾸역 꾸역 먹어치워 버렸구나. 빨리 다음 독서를 향해 나아가야지. 하는 느낌이 또 내 뇌리를 쥐어박네.
너무 오랜만에 읽어서 그런지 독후감이 꽤 길어졌다. 급하게 마무리해야지. 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