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브레이브 스토리를 처음 접한 것은 아마도 고등학교 때. 만화책방을 서성거리면서 ‘뭐 볼 거 없나’ 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의 나 역시 판타지에 상당히 꽂혀 있었기 때문에, 아니 사실은 내 학창시절의 전부는 판타지의 연속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판타지에 물이 들어 있었기 때문에 만화책 선정의 기준도 거기에 부합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찾아낸 것이 브레이브 스토리 신설. 굉장히 무난한 설정이구나 싶으면서도 그림체가 의외로 진중하고 더군다나 구슬을 모으면서 싸움을 이겨 나가는 와타루의 모습이 굉장히 멋있어 보여서 그 자리에서 5권 정도를 연달아 빌렸다. 역시나 취향이 맞아 떨어졌던지, 나는 독서실을 핑계로 브레이브 스토리를 빌려 가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기억으로는 ‘아, 정말로 내 타입의 만화이다.’ 정도였는데, 사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브레이브 스토리는 사실 소설이 원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설을 실제로 접한 것은 대학교에 올라와서였지만, 만화책을 읽는 그 순간에는 ‘소설도 언젠가 꼭 읽으리라.’하고 생각하곤 했었다. 사실 만화책도 다 읽진 못했지만.. 그 책방에 완결까지 있진 않았거든.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대학생일 때, 극장판 브레이브 스토리도 있다고 해서 아마도 메가tv 시절일 때 그걸 보게 되는데 만화책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라서 갈팡질팡했던 기억이 난다. 뭐야. 뭐가 진짜인거야. 아마 원작이 따로 있고 2차 저작물일 때에는 그 분위기가 상당히 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지 못했던 모양이다. 흑백논리로 진짜, 가짜를 나눌 생각밖에 못하다니.. 아무튼 이 애니메이션의 내용은 잘 생각나지 않지만, 아마 소설의 분위기와 맞아 떨어지는 것은 극장판이겠지. 굉장히 부드러운 애니메이션이었다. 만화책은 굉장히 소년만화스럽고 전투 장면도 많았던 기억인데.

그리고 또한, 대학교에는 도서관이 있기 때문에 브레이브 스토리를 읽을 기회도 상당히 있었다. 하지만 나는 번번히 이 소설을 읽는 데 실패하곤 했는데, 1권 전체가 현실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나를 상당히 루즈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리라. 나는 판타지스러운 면만 추구하며 읽기 시작했었는데, 그런 생각으로 읽으면 역시 지치기 쉬운 것이다. 기대하고 있는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면 지루해지며, 결국 그 책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나는 최대 2권 중반 정도까지 읽는 것으로 그쳐야 했다. 이런 두 가지 마음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 ‘한번 완독하긴 해야 하는데.’ 하는 마음과 ‘아, 못 읽겠다.’ 하는 마음. 판타지를 좋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려면 이 책 정도는 읽어야 할 것 같은데 라는 마음과 아 귀찮다. 하는 마음이 공존한 것이다.

하지만 얼마 전, 브레이브 스토리를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산 날을 기점으로 나에게 이 책은 ‘꼭 읽어야 하는 책’이 되었고, ‘즐거움을 찾아서라도 완독을 해야 하는 책’ 이 되었다. 다행히 요 최근 미야베 미유키씨의 소설을 굉장히 많이 읽었기 때문에 그녀의 문체가 까끌거리지도 않고.

어제 새벽에 갑작스럽게 탐욕스럽게 읽기 시작해서 지금 시간에서야 다 읽었다. 결국 다 읽었다. 그리고 사실 상당히 재미가 있기도 했다. 예전에는 ‘기대하던 것’만 찾아대며 읽었기 때문에 그렇게 지루하게 느껴졌으리라. 하지만 역시나 이 소설은 상당한 수작으로, 와타루의 성장기를 꽤 감동스럽게 풀어내고 있었다.

아, 왜 이렇게 길어지냐. 이 책을 읽은 게 나에게는 아마 상당히 큰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리라.

여기서 끊고, 줄거리를 이야기하자면.

와타루가 미쓰루의 도움으로 간 비전에서 구슬 5개를 모아서 운명의 탑으로 가면 자신이 바라는 소원을 이룰 수 있는 여행자가 되어 겪는 모험기로, 와타루는 키키마와 미나, 이 두명의 동료와 함께 한때는 즐겁게, 한때는 힘겹게 모험을 해나가게 된다. 결국 마지막에는 북쪽 대륙과 남쪽 대륙의 정치적 문제가 대두되는데, 여러가지로 우리 나라의 현실과도 맞물려 생각하게 되는데, 아니, 아무튼 굉장히 생각할 꺼리가 많다. 여기 저기. 종족 차별이라거나 종교적 문제라거나 일촉즉발의 전쟁이라는 분위기라거나. 공감이 가는 한편 미야베 월드의 ‘현실감’에 몸이 떨릴 정도였다. 나도 이 정도로 섬세하게 책 속 세계를 구상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과 긴장감이 돌았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결과적으로 와타루는 자신이 부정하던 분노의 분신까지 물리치고(?) 미쓰루의 마지막 다섯번째 구슬을 획득한다. 그리고 여신에게 가서 자신의 소원은 마계와 연결되는 통로인 어둠의 거울을 산산조각내서 비전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와타루는 말하게 된다.

그리고 와타루는 현실로 돌아와서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담담하게, 하지만 꿋꿋하게 어른이 되어간다.

하는 내용이다.

뭔가를 다 읽고, 보고, 깨고 쓰는 글은 ‘빨리 배출하고 싶다’라는 욕망 때문인지 두서가 없는 글이 되는 것 같다. 요 최근 나의 글이 전부 그렇네. ㅋㅋ.. 뭐, 내가 보라고 쓰는 글이니까 아무 상관 없지만.

여기까지. 지금까지 미루었던 게 바보스러울 정도로 굉장히 생각할 게 많았고, 즐거웠다. 다시 읽을 수 있다면 그때는 또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읽게 되겠지.

즐거웠던 독서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