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중학교 시절, 활자를 꾸역꾸역 아무 생각 없이 삼켜 먹던 시절에 겨우 겨우 다 읽었던 글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남는 것도 감흥도 아무것도 없었다. 딱딱한 우리나라 말로의 해석과 헤르만 헤세의 철학적 사유가 책을 무지막지하게 어렵게 느껴지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그런 고로 데미안은 ‘읽었다’는 느낌만 남아있을 뿐, 나에게 있어선 껍데기에 불과한 글이었다.

아무튼.

최근 데미안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 계기가 된 건 블로그 글을 읽은데서부터다. 나는 기본적으로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인간이라, 내가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에 있어서는 무진장 욕심이 많다. 물론 욕심이 많은 것과 행동력이 뛰어난 것은 별개의 문제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이 욕심이 나를 이끌어 행동에 닿을 때도 있는 법이다.

그런 이유로 이번주 월요일, 나는 데미안을 빌렸다. 꼭꼭 씹어서 완독해 보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바로 지금, 나는 데미안을 완독했다. 두려움과 오만함으로 가득 차서 읽기 시작한 책이었지만, 이 책은 생각보다는 짧은 책이었고 생각보다는 사유할 거리가 많은 책이었다. 결국 내 두려움도 오만함도 모두 만족스럽지 못했다.

자, 그럼 책 내용으로 들어가보자.

성장소설이란 무릇 이래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책은 자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를 향해 조금씩 조금씩 발걸음을 옮겼다. 물론 결과론적으로 싱클레어가 완전한 성장을 이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싱클레어의 성장은 읽는 내내 나를 꽤 뿌듯하게 만들었다.

그는 어린 시절 프란츠 크로머라는 악을 접함으로써 알을 깨는 행위를 시작했다. 이 책의 근간이 되는 글,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의 시작이다. 알 속은 편안하고 선으로 가득하며, 남과 자신을 구분할 필요가 없지만 알 밖의 세계는 다른 법이다. 선과 악이 숱하게 섞여 있다. 싱클레어는 선과 악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새가 되어야 했다.

그 조력자로써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을 제시한다. 그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과시하는 데미안. 싱클레어는 알 속과 다른 모습인 바깥 세계, 즉 데미안의 행동양식을 동경하면서 또 거부한다. 알을 깨는 행동은 고통을 수반한다. 하지만 데미안, 즉 그가 알고 있는 세계를 완전한 세계로 인정하지 않는, 세계의 다양성을 직시시키는 바깥 세계는 싱클레어의 거부 의사와는 관계 없이 그에게 차츰 차츰 밀착되어간다.

그리고 피스토리우스. 오르간 연주자이자 성직자의 꿈을 간직하고 있는 그 역시 싱클레어의 성장에 도움을 준다. 만들어져 있는 종교, 기독교만이 전부가 아님을, 아프락사스를 알아버린 그는 그 온전하고 선만이 가득한 종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음을 그는 받아들였다. 막 잉태된 새로운 종교의 성직자를 꿈꾸며 그는 싱클레어에게 세계의 다양함을 또 한 번 인지시킨다. 그리고 그를 바깥으로 사정없이 당긴다. 하지만 싱클레어에 의한 사소한 상처 하나를 피스토리우스가 끝없이 벌려버리며 그는 자체적으로 꿈을 포기하게 된다.

또한 에바 부인. 데미안의 어머니인 그녀는 싱클레어의 이상향을 표현하고 있었는데 싱클레어의 끝없는 사모로도 결국 그는 이상향에 닿을 수 없었다. 단지 이상향을 대변하는 데미안의 키스로써 바깥 세계에서 이상향을 찾는 싱클레어를 응원할 뿐이었다.

마지막, 데미안이 아무렇지도 않게 크로머를 언급하는 부분에서, 그리고 싱클레어가 그 말에서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은 것에서 싱클레어의 알은 완전히 깨어졌음을 상기시킨다.

삶은 전쟁인지라, 싱클레어는 다친 몸을 이끌고 계속해서 자신의 현실을 찾아나갈 것이며, 자신을 알아갈 것이다. 아마도.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걸 그냥 주저리 주저리 적어봤는데, 아마 몇 번 더 읽어야 이해도가 높아지지 않을까? 내 생각들이기 때문에 틀린 점이 굉장히 많을 수도 있다는 점은 고려하고 읽어주시길! 물론 만약 읽는 사람이 있다면.. ㅋㅋ

아무튼 철학적 사유가 범람하는 책이었다. 이러니까 중학생의 내가 ‘이게 뭐야. 졸려.’ 라고 생각하지. 다음에 또 읽으면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에 또 하나 수록된 글, 수레바퀴 밑에서. 이 글로 계속 달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