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상록수
지금 생각해보면 옛날의 나는 겉치레만 잔뜩 든 골빈 놈이었던 것 같다. 책을 좋아한다. 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그렇게 많은 책을 읽은 것도 아니었고, 글을 쓴다. 라고 말했지만 그럴듯하게 완성한 글 하나 제대로 없었던 것이다.
아마 이 책은 고등학교 즈음에 다 읽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상록수. 농촌 계몽 운동을 주제로, 동혁과 영신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주제만 들어보면 사회 시간에나 들을 것 같은 따분한 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대로다. 일제 시대의 암울함과 농촌의 무지함이 사회 시간에 들은 것보다 더욱 생생하게 보여진다는 것 이외에는 별 차이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오랜만에 다시 읽은 이 책은 내 오랜 고정관념 속에 박힌 것처럼 그렇게 딱딱하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무진장 재미 있었다. 역시 소설은 소설인지라, 감동적인 부분도 상당히 많았다.
다시 내 옛날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면, 옛날의 나는 이 책을 무진장 힘들게, 그리고 지루하게, 하지만 아주 조금 감동을 느끼며 읽었다. 그렇게나 소설을 보는 눈이 없었다. 그저 내 입맛에 맞는 책 글귀나 들쑤시기 바쁜 겉멋 든 놈이었다. 한심도 그런 한심이가 없다.
아무튼.
오랜만에 이 책을 다시 읽게 된 계기는 아주 단순했다. 데미안을 읽고,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다가 그 책 들고 오기가 귀찮아서 그냥 경주로 온 게 화근이었다. 집에서 읽을 책을 선정해야 했으니까. 그래서 집에서 책을 찾아보던 중에, 옛날 엄마가 내 논술 실력 향상을 위해 사준 경질의 책 70권이 눈에 띄였다. 이 책 중에 데미안도 있었던 것 같은데. 하면서 뒤적이다 보니, 데미안은 그저 간추린 내용으로, 서양 고전 문학들을 한권에 때려놓아져 있었을 뿐이었다. 수레바퀴 아래서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내 생각은 그렇게 사그러들었다.(헤르만 헤세의 작품은 데미안과 지와사랑만이 간추려져 있었다.)
그러다, 이 책들을 귀찮아서 얼마 뒤적여 보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라서, 아 이제 이 책들이나 한권씩 독파해 나가볼까 하는 괜한 욕심이 일어서 첫번째 권을 끄집어 내 보았다. 그게 바로 상록수. 이 70권의 책 중에 그나마 읽어본 책에 드는 책이 바로 이 상록수였다. 제법 열심히 읽으려 했던 티가 나는게, 다른 책들은 마치 새책 같았지만 이 책은 제법 상해 있었다.
사족이 기네. 오늘따라.
오랜만에 접한 상록수는 무척 재미있었다. 동혁과 영신이 ㅇㅇ일보사에서 만나며 시작되는 이 소설은, 동혁의 고향인 한곡리와 영신의 제 2의 고향인 청석골이 주 배경이다. 동혁과 영신은 서로의 열정과 평생 사업에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스토리이고, 그들이 서로의 사업에 얼마나 목을 메는지가 감상 포인트이다. 굉장하다. 이 정도의 열정을, 자신과 큰 관계도 없는 곳에 뿜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굉장하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분들의 열정이 하나 하나 모여서 지금의 우리나라가 되었구나. 하는 것도 새삼스럽게 느껴지고.
눈물나는 고군분투를 겪고, 피와 살이 끊어지는 듯한 평생의 이별 한 후, 동혁이 상록수들을 보며 살아있는 동안 농총 계몽 운동에 매진하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을 다지는 모습은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을 정도이다.
항상 일이 연애보다 중요하다고 서로에게 각인하던 그들은 결국 비극의 파국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씁쓸하군.
책을 덮으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은 애국심이 생기는 느낌이다. 이런 글을 읽고도 애국심이 생기지 않는다면 감정이 조금은 이상한 사람이지 않을까. ㅎㅎ..
지금 세상에서는 이 정도로 나라에 몸 바칠 필요는 없겠지. 그러니 나는 내 나름대로 내 평생 사업에 온전한 내 열정을 모두 바쳐야겠다.. 하고 생각한다.
잘 될지는 미지수. ㅎㅎ..
아무튼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