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하루키의 여행법
내 ‘일상적인 하루’에 대한 페이스는 상당히 무너지기 쉽다. 이건 저명한 사실이다. 언제나 내가 무너져내릴 때는 나의 하루의 패턴이 망가졌을 때이니까. 사실 말하자면 나는 지금 나의 일상이 완전히 망가진 것에 대한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졸업 작품’을 하기 위해 생활을 망가뜨렸고, 그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밍기적거리는 하루를 살고 있었다. 그렇기에 책을 읽을 시간조차 제대로 가질 수 없었다.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일 뿐인 것이다. 그렇지만 역시 이건 변명이다. 변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는 나를 컨트롤 할 수 없었다. 그것 뿐이다.
아무튼. 내 자책에 대한 글은 여기까지 끄적이도록 하고, 본론에 충실하도록 해야겠지?
이번엔 완독한 책은 하루키의 여행법. 제목에서 풍기는 냄새만 맡아도 아 이 책은 여행 에세이로구나. 하고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제목은 직관적이고, 그것은 사실이다. 하루키가 여행을 한 것에 대한 에세이들을 책으로 묶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각각은 다른 시기에 어느 잡지들에 실린 글들이 원문인 듯한데, 돈을 받으면서 여행의 욕구까지 채우고 글까지 쓴다니,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란 이런 사람을 일컫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일단 차례를 훑어보자면 간 곳도 참 많다. 이스트햄프턴, 무인도, 멕시코, 우동 맛집 탐방, 노몬한, 미국, 고베. 그리고 이 중 단 하나도 사비를 들여서 간 곳은 없는 모양이다.(모두 읽은 지금 시점에서 보자면 그렇다고 생각한다.) 역시 대단하다. 하루키. 위대한 작가라고 할 만하다. 위대한 이라는 수식어는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친다. 라는 의미라고 생각하는데, 자신의 취미 생활 마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수준이라면 역시 위대한 이라는 수식어는 이 남자, 하루키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여행 수필은 모르는 장소를 여행한다는 점, 그리고 그 모르는 장소를 모르는 사람의 시각으로 본다는 점에서 굉장히 흥미롭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장소를 내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면 재미는 배가 되겠지만 역시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우동 맛여행’이라는 제목의 우동 맛집 탐방이었는데, 시코쿠라는 곳이 아무래도 우동이 유명한 모양이다.(물론 글을 읽는 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그 유명한 곳에 단지 우동을 먹기 위한 목적으로, 그것도 그 우동 먹는 목적이 ‘일’의 일환이 된 상황에서 하루키는 차례 차례 유명한 우동집들을 순례하게 되는데 그가 설명하는 우동집들은 하나같이 군침 돌게 만드는 곳들이다. 글은 역시 여러가지 매력이 있는 모양이다. 단지 활자 몇몇을 나열했을 뿐인데 내 침샘은 마치 음식을 앞에 둔 듯 했으니까. 하루키와 작업을 몇번 했던 만화가가 삽화를 그렸는데 그 삽화가 이해도를 높여줌으로써 그 순간 우동 한사발을 말아먹고 싶어졌을 정도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무인도 여행이 아닐까? 무인도에서 느긋한 2박 3일을 겪고 올 요량이었지만, 벌레들의 공세에 못 이기고 하루만에 물러선 이야기. 환상이 아닌 현실의 무인도라는 점에서 굉장히 깔끔하고 유쾌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비록 벌레들이 우글거리더라도 무인도는 한번 가보고 싶구나. 하는 생각도 조금.
이런 식으로 글을 늘려가다간 제 명에 못 살고 이 글만 적어야 할 것 같네.
아무튼 하루키의 글은 유머러스한 맛과 그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문체 등, 즐거운 거리가 꽤 많다. 나의 생각과 그의 생각을 비교하는 작업 역시 굉장하고, 조금은 존경하게 된다. 아무튼, 문체가 너무 자연스럽잖아. 최근에(라기보단 꽤 오래 전부터 쓰고 있지만 진도는 안 나가는) 쓰던 유럽 에세이는 아무리 봐도 그냥 중고등학생의 일기 수준밖에 안되는데. 작가와 일반인의 차이라는 것이겠지.
끙. 재밌었지만 조금은 서글프네.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