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지 한참 지난 책의 독후감을 쓴다는 것은 역시 뭔가 허탈하기 그지 없다. 분명히 읽고 난 후에는 ‘아, 써야겠다.’하고 생각하지만, 그 짧은 순간을 지나쳐버리면 쓸 기회를 놓쳐버린다. 미루고 미루고 미룬다. 그렇게 미뤄대다가 이제 와서야 적어야겠다. 하는 기분이 잠깐이나마 살아나서 이렇게 키보드를 잡는다.

렉싱턴의 유령. 제목에서 뭔가 끌리는 건 없는 것 같다. 내 처음 생각이었다. 이 날, 나는 하루키의 글들을 한데 모아서 사재기를 했다.(그야말로 사재기였다. 물론 읽을 예정이다. 이미 하나는 읽었다. 하루키의 여행법 말이다.) 그 이유란 게 참 단순한게, 이렇게 사재기 하기 직전에 하루키 문학에 대한 책을 읽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다 읽은 건 아니고, 읽다가 포기했다. 내가 접해본 하루키의 글의 가짓수가 너무 비루했기 때문에 재미가 떨어졌고, 더군다나 저자가 간단히 설명해주는 줄거리로만 책을 접하기엔 너무 아깝다고 느꼈다.. 뭐, 결국 다 못 읽었다는 소리.

아무튼 그렇게 사재기한 책들 중 하나. 그리고 그 중 가장 얇은 책인 렉싱턴의 유령이었기 때문에 서울로 올라갔다 내려오면서 남는 시간에 읽기 적당한 책이라고 생각했고,(아. 면접이 있어서 서울에 갔다 왔다.) 그때 지참하고 간 덕분에 완독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완벽한 변명이 완성되었다. 서울을 하루만에 갔다 오느라 녹초가 된 나는 독후감을 쓸 여력이 없었다. 물론 핑계다.

아무튼 사족은 여기까지 달고, 이 책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렉싱턴의 유령은 단편집인데, 단편집이 의례히 그렇듯이 이 책 역시 단편들 중 하나의 제목이다. 그리고 이 단편은 꽤 흥미롭다. 자신의 경험담이라고 말하며 시작하는 부분부터 심상치 않다. 외국 친구의 집을 봐주다가 유령들의 파티를 조우하는 내용인데, 묘하게 현실감이 있었다. 한번 읽는 게 나쁘지는 않은 글인 듯.

아, 하나 하나 이야기하기엔 너무 귀찮고, 일단 목차를 보자.

  1. 렉싱턴의 유령
  2. 녹색 짐승
  3. 침묵
  4. 얼음 사나이
  5. 토니 다키타니
  6. 일곱번째 남자
  7.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

이렇게 7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각각은 미묘한 찝찝함을 가지고 있는, 글 속에 내용을 가득 가득 품고 있는 가벼운 내용들로, 가볍게 읽자면 가볍게 읽히고 무겁게 읽자면 무겁게 읽히는 그런 글들이다.

이 중에서 가장 찝찝하게 기억에 남는 건 녹색 짐승. 한 부인이 녹색 짐승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무자비한 행각들인데, 이게 참 또 흥미롭다. 이건 다른 사람들에게 좀 읽어보라고 추천해주고 어떤 기분을 느꼈느냐 하고 인터뷰라고 하고 싶다. 그만큼 찝찝하다.(혼자 찝찝할 수는 없지.)

침묵 역시 현실적으로 사회의 한 부분을 찔러대서 굉장히 찝찝하다.

사실 모든 글들이 은연중에 찝찝함을 내포한다.

이 글들은 이렇게 묶으면서 하루키가 다시 한 번 정리를 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글은 역시 수정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나의 글들은 모두 쓰레기이지 않을까. ㅋㅋ

아무튼 다 읽었다고 이렇게 흔적을 남길 수 있게 되어서 영광, 또 영광.

거의 일주일 전에 읽었구나. 14일날 다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