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관계로부터 편안해지는 법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서 완벽한 의사소통은 없는 것 같다. 예전에 이혁이와 같이 살 때도 그렇게나 많은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겪었었지. 그렇게나 친한 사이인데 의사소통은 그 오랜 시간 쌓아올린 신뢰도 무시하며 우리를 마구 짓밟아 놓았었다. 감정이 상한 적이 많았고, 이혁이도 많았을 것이다. 뭐.. 그랬다. 그만큼 ‘관계’란 어려움을 쌓아올린 블럭같아서 더 쌓기도, 무너뜨리기도 곤란한 그런 것이지 않을까 한다.
요즘 부쩍 삶의 의욕이 시들해지고 있다. 항상 이렇다. 열심히 살아야겠다. 하고 바짝 열심히 살고는, 이렇게 시들해지는 기간이 돌아온다. 그리고 항상 돌아오는 이 기간을 나는 항상 어떻게 견뎌왔었는지 모르겠다. 이 기간이 되면 항상 머리가 아프고 무기력이 양떼처럼 몰려온다.
아무래도 이 무기력의 원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자가진단에 따라 나는 오늘 인간관계에 대한 책을 업어오게 되었다. 무기력할 땐 아무튼 서점에, 혹은 강가에(이상하게도 항상 강 근처로 흘러간다. 부산에서는 을숙도, 서울에서는 한강공원.) 가게 된다. 이건 이제 거부할 수 없는 습관의 형상을 띄고 있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벌어진다. 오늘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서점에 가게 되었고, 자가진단을 했으며, 책을 구매했다.
오랜만이었다. ‘괜찮다’는 확신이 더 크게 드는 책은. 책이 무척 가볍고 활자가 커서 너무 쉽게 읽어내려갈 것 같다는 걱정 외에는 그다지 걸릴 것도 거칠 것도 없었다. 동생과의 약속 시간이 자꾸 나를 보채서 다른 책을 더 구경하고 싶은 마음을 접고 이 책을 사왔지만, 아무튼 사는 중에는 전혀 후회가 없었던 것 같다.
동생이랑의 약속을 처리하고 집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이 책을 펼친 것이라는 게 이상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앞에서 그렇게 언급했으니 미래의 나도 고개를 끄덕이리라고 본다. 아무튼 나는 힐링이 필요한 모양이다. 조금만 읽고 씻어야지. 하며 펼친 책을 앉은 채로 다 먹어치워 버렸다.(역시 내 불안감은 이리도 쉽게 적중한다. 너무 빨리 읽을 것 같았어.)
이 책은 신경 내과의인 저자의 경험들을 스토리로 풀어서 관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이야기로 이루어진 글들은 아무래도 딱딱한 문체를 여과하여 부드럽게 만들어내고, 쉽게 풀어져 있으므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아니, 그러니까 이게 문제다. 너무 빨리 읽어버려서 감흥을 오래 즐길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자의인지 타의인지 알 수 없는 채로 순식간에 다 읽어버렸다..
관계에 대한 진부한 이야기들이 나열된 부분들도 분명 있었으나, 나를 위로해주는 몇몇 글귀도 확실히 존재감을 띠고 책 안에 존재하고 있었고, 나는 요즘의 흐트러진 관계에 대해, 그리고 나에 대해 조금이나마 생각할 수 있었다… 라지만 아무튼 필요한 부분은 다시 한 번 곱씹으며 읽어봐야 할 것 같다. 나를 위해서.
에효. 다음 책은 또 뭘 읽을까. 원래라면 행복한 프로그래머를 읽어야 할테지만, 전공서적에 손이 가지 않는 요즈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