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1973년의 핀볼
이 책은 저번주였나? 저저번주였나? 종현이가 우리 집에 왔고 함께 알라딘 중고 서점으로 놀러 갔을 때 구매한 책이다. 그 날은 뭔가에 씌인 듯이 이 책을 구매했다. 사실 책을 구매하고픈 욕구가 그다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1973년의 핀볼’이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이걸 집어들었다. 하루키의 책 중 초기작들을 보고 싶다는 욕구가 어느 정도 있는 편인데, 그 욕구는 이번년도 초, 양을 쫒는 모험에서 굉장히 감명을 받은 후 커져 있는 상태였다.
아무튼 그런 연유로 구매한 책이었지만, 이런 저런 일이, 책이 내 시야를 막아서 오늘까지 이 책의 존재의 무게감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가끔 독서 의자(쇼파?)에 앉을 때마다 이 책을 보며 ‘아차 이 책 읽어야 하는데! 읽고 싶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으나 그때마다 내 손엔 다른 책이 들려져 있었으니.
어제 노인과 바다를 다 읽고 나서 ‘내일은 뭐 읽을까?’ 하고 책장을 보다가 이 책을 또 ‘발견’했다. 그리고 일순 행복해졌다. 이제는 아무리 생각하고 핑계를 대려 해도 댈 핑계가 없어서 실용주의 프로그래머를 다시 읽기 시작해야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중이었다.(실용주의 프로그래머, 읽다가 컨디션이 정말 최악일 시기라 잠깐 덮어둔 상태다..) 하지만 또 한 번 나에게 핑계가 주어지니 행복할 수밖에. 더군다나 읽고 싶던 책이니까.
작가의 이름을 보고 사는 책들은 모두 내가 ‘읽고 싶던 책’의 범주에 든다. 그 외에는 그저 느낌에 의한 선별이었을 뿐이다. 완전히 엉망으로 실패하는 일은 자주 없지만, 아무튼 그런 책들은 기대감을 안고 보진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보통의 책들보다 기대감을 안고 보았지.
오늘 면허 갱신을 하지 않으면 벌금을 물 참이었다. 그래서 서부 운전 면허 시험장엘 갔는데(잠깐, 잠깐. 이 책을 오늘 하루만에 다 읽은 경위를 설명하고자 하는거니 갑작스러운 주제 변화에 놀라지 말길. 미래의 나.) 생각 외로 사람이 너무너무 많았다.. 오분 십분만에 된다는 면허갱신을 하기위해 이 수많은 인파를 견뎌내야 하다니.. 하지만 그 덕분에 책을 한권 다 읽었으니 뭐 나쁜 딜은 아니었나.
다행히 나에게는 가지고 온 책, 1973년의 핀볼이 있었고 결과적으로 이걸 다 읽어버렸다. 강제로 하루만에 다 읽게 만드는 상황에 고마워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ㅋㅋ
이제 이책의 내용으로 들어가자. 이 책은 주인공인 나와 쥐, 이 두 주인공의 각각의 내용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일단 나에 대한 이야기. 나는 나오미라는 여자친구를 잃고 그 열정을 쏟을 곳을 잃는다. 그 열정은 그대로 자신의 단골 술집에 있는 핀볼로 향하게 됐는데(그 쥐와 함께 이걸 즐긴다.) 후일 허름한 오락실에서 이 핀볼을 발견하고 열정을 고스란히 바친다. 하지만 그 오락실이 커피가 맛없는 도너츠집으로 바뀌면서 그의 여정이 시작된다. 그는 갑자기 나타난 이름 모를 여쌍둥이와 함께 살면서 스페인어 교수인 핀볼 매니아에게 그 핀볼의 행방을 묻는데 결과적으로 그는 그 핀볼을 어느 핀볼 수집가의 창고에서 조우하게 된다.
이 부분에서 약간의 전율. 그는 그 핀볼과 마치 ‘나오미’인 마냥 이야기를 나누는데(막상 플레이는 하지 않는데 그때의 기록을 갱신하길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때의 추억을 확장시키길 바라지 않는다는 말이겠지.) 그는 그 차디찬 영안실같은 창고에서 나오미와의 실질적인 결별을 맞이하고, 여쌍둥이를 보내게 된다.
그의 방향 잃은 열정이 이리 저리 꿈틀거리는 모습에서 느끼던 연민은 그 마지막 장면과 함께 해소되었다. 하.
자. 그럼 나의 정신을 매우 난잡하게 만들던 쥐의 이야기로.
하루키의 이야기 방식 때문인지 내 이해도의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이야기가 중반까지 흐를동안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나와 쥐가 동일인물인가? 하는 의문을 계속 품고 책을 읽어 나갔다. 중반을 지나면서 아 다른 인물이구나, 알게 되었지만.(제임스 바에서 나와 쥐가 같이 있는 장면이 나온다.)
쥐는 중고 타자기를 구매하며 알게 되는 여자와 사귀며, 단골 술집인 제임스 바에 수시로 들락거리며 그 도시에서 살아간다. 그러던 중 그는 이 곳을 떠나고자 마음을 먹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여자친구에게 수시로 하던 전화를 하지 않게 되고 제임스 바의 제이에게 이 곳을 떠나고자 알리게 된다.(그는 제이에게 알리는 과정을 더욱 힘들어했다.) 그리고 도시를 떠난다.
뭔가를 떠나보낸다는 것은 이토록 많은 내적 갈등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작은 쓰레기 하나마저도 정을 통하면 소유권을 포기하기 싫어지는 법이다. 아무튼 나라는 인간은 ‘버림’에 대해서는 도저히 관대해 질 수가 없다. 그렇지만 현실을 살아가며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는 삶이란 있을 수가 없다. 나와 쥐가 그랬듯이 뭔가를 떠나보내려 한다면 마음을 굳게 먹고, 이별을 통해 완전한 안녕을 취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그렇다. 쩝.
꽤 길어졌는데, 이 글을 적는 동안 미미여사님의 크로스 파이어를 구매했다. 또 핑계가 생겼군.. 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