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지하로부터의 수기
예전, 블로그에서 이웃이던 분이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읽고 감상을 쓴 적이 있다. 그 글을 보고도 나는 막연하게 이 글이 어떤 수감자에 대한 글인 줄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착각은 책을 읽고 나서 거의 15분 동안 지속되어 내가 책의 흐름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게 만드는 장애가 되었다. 지하라고 하면 이상하게 감옥이 연상된다니까.. 연상과 추측의 독서로 점철되어 있는 나의 독서편력의 단점이 강력히 부각되는 순간이다.
아무튼, 이 책은 상당히 낯부끄러운 책이다. 내가 남에게 차마 보이지 못하는 치부를 이 책은 이 글은 자연스럽게 표출해낸다. 사회부적응자의 자신이 자신의 상처를 핥는 모습은 매우 익숙한 모습이었고, 당연히 그 모습은 바로 나 자신으로부터 찾아낼 수 있었다. 예전의 나는 그 정도가 심해 아마 내적으로는 그와 굉장히 흡사한 모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2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는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없이 쭉 나열하는 형태이고 2부는 그 자신의 생각과 이야기를 함께 표출하는 형태이다. 1부에서 쌓인 그의 신념 아닌 신념은 2부에 와서 처절히 무너져 내리지만 1부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신념 아닌 신념, 자기위로는 어김없이 이어진다.
2부에서는 장교와의 어깨 부딛힘, 동창들과의 무시와 모욕, 리자와의 만남 크게는 이렇게 세 가지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모두를 거치면서 지하인이 지상으로 나올 수 있는 여지를 말살시켜 버린다.
이 책의 내용은 체르니셉스키의 ‘교육을 통한 이성의 확대로 이성적 이기주의에 눈뜨게 되면 악해지는 건 불가능하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과 패러디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그 말대로 지하인은 지성인을 표방하고 있으나, 그의 내면은 약하고 부러지기 쉽다. 타인보다 우위를 점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으며 그것은 그다지 악하지 않지만 악하게 보이며 자신의 심리를 좀먹는다.
아무튼 꽤 우울한 책이었고, 나 자신에게서도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것에 더 우울하다. 책 자체도 뭔가 읽기 어렵게 해석되어 있었고.. 그래도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