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어스시의 마법사
어슐러 k 르귄님의 책이자 3대 판타지 중 하나라고 일컬어지는 어스시 연대기의 책 일부를 드디어 드디어 구매했다. 그렇게나 읽고 싶어 했는데 이상하게도 연이 없어서 어스시 연대기는 한번도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었는데, 알라딘에 4부까지가 한번에 생긴 덕분에 기쁜 마음으로 달려가서 구매했고, 기쁘게 하루만에 어스시의 마법사, 1부를 다 읽어내릴 수 있었다. 읽으면서 생각했지만, 역시 어릴 때 이 책을 들었다면 그다지 즐겁게 읽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자꾸 스친다.
그도 그럴것이 내용만으로 보자면 평탄하기 그지 없는 영웅의 성장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마 생각의 골이 채 여물지 못했던 시기에 읽었다면(대부분의 글을 그때 읽긴 했지만.) 아, 내 생각과는 다른 책이구나. 이 책 역시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라고 제멋대로 판단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때의 나는 드래곤 라자와 닮지 않은 책이라면 모두 나와 어울리지 않는 책이었으니까.. 뭐, 지금도 드래곤 라자는 사랑해 마지 않는 소설이기 때문에(첫사랑이라고나 할까.) 그 소설에 대한 애정을 깎아내리고 싶진 않지만, 아무튼 그와는 궤를 달리하는 다른 판타지 소설들 역시 비방할 자격이 없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 책, 어스시 1부, 어스시의 마법사는 게드의 성장담을 그리고 있다. 게드는 놀라운 재능을 가진 마법사로 어릴 때 간단한 마법들을 부리는 법을 이모에게 배우고 그것으로 마을을 지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되는데 그것이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그 사건은 지진을 멈춘 마법사, 오지언과의 인연으로 이어지고, 새매는 그에게서 그 자신의 진실된 이름 게드라는 이름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작은 세계를 떠나서 어스시라는 세계로 발을 딛게 된다.
그와 함께 그는 수많은 성장통을 겪게 되는데, 우선 영주 부인의 딸의 꾀임으로 오지언의 책을 훔쳐보다 그림자에게서 공포에 빠지는 일, 오지언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고 로크로 가게 되는 일, 로크에서 보옥과의 승부로 인해 그림자를 만들어낸 일, 그 상처로 한동안 사경을 헤메는 일, 한 사람의 마법사로서 자립하면서도 그림자의 그늘 속에서 늘 불안에 떨었던 일, 용 예바우드를 동쪽으로 오지 못하게 한 일, 그림자에게 쫒기다 성벽 안으로 도망쳤고, 돌 앞에서 무릎을 꿇을 뻔한 일, 매가 되어 스승에게 돌아가 타계법을 찾은 일, 사냥감에서 사냥꾼이 된 일, 사냥꾼에서 사냥꾼도 사냥감도 아니게 된 일, 들콩과 함께 그림자를 쫓으러 항해한 일, 그림자를 자신으로 인정하고 하나의 인간이 된 일.. 이렇게 하여 게드는 게드로써 하나의 완성된 인간이 되었다.
무척이나 단순한 내용이었지만, 그 안의 메시지는 아주 확고했다. 마법을 사용할 때 경계해야 하는 세계의 균형은 한쪽의 힘이 너무 거세지는 것을 경계함을 일컫는 것일테고, 이 책에서 말하는 그림자 역시 그 균형의 일부로 표현되어진 이면이었을 뿐, 결국 선이든 악이든, 한쪽이 완강하게 굳어지는 것을 항시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듯했다. 그 균형은 한쪽이 한쪽을 쫓아서도 안되고, 한쪽이 한쪽을 집어삼켜서도 안되며, 그 한쪽을 병폐 취급해서도 안된다. 즉 흑백논리만으로는 게드는 그림자에게 사로잡혀 유래 없는 끔찍한 마법사가 되었을 것이다.
또한 이름 그 자체가 권능이 되는 설정도 특이했는데, 이름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자아, 정체성을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자신의 정체성을 상대방이 휘두르면 자신은 속박되고 얽메이며 한 사람으로써의 힘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다른 존재로 변신하는 변신 마법의 묘사에서도 드러나는데 새매는 실제로 매가 되어서 자신의 스승에게 날아갔을 때, 매의 정신에 사로잡혀 게드로써의 정체성을 완전히 잃을 뻔 하였다. 그것은 그가 이름을 잃어버리는 것이나, 그림자에게 먹히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그림자를 ‘게드’로 받아들이며 완전함이 되었고 전설의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나는 책을 덮었다.
꽤 오랜만에 즐겁게 판타지를 읽었던 탓에 독후감이 꽤 길어졌는데, 아무튼 상당히 재미있었다. 하나의 이야기에도 흩어짐이 없고 기승전결,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완전히 끝맺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왠지 딱딱할 것만 같았는데 그런 느낌도 전혀 없었고….
다음 책은 아투안의 무덤이다..! 아이고 공부도 해야지.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