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사람은 배움의 동물인 것이 틀림없다. 혹은 나의 성향이 너무나 뚜렷해져서인 걸지도 모르지.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것은 새로운 감흥을 불러 일으키는 법이다. 나는 몹시나 고개를 끄덕여서 고개가 아픈 채로 책을 덮었다. 그리고 오늘, 내가 예전에 읽고 난 후 쓴 독후감을 보았는데, 무지함의 향연이었다. 그런 부분들에 불편함을 느꼈구나.. 멍청하다. 결국 멍청함으로 도치되는 나의 예전 모습에 한숨을 쉬며 뒤로가기를 누르고야 말았다.

아무튼 간만에 기술 서적이 아닌 책을 다 읽어냈다는 것에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진다. 역시, 기술 서적보다는 빨리 읽을 수 있구나. 이번 주말에 짬짬이 시간을 내서 읽은 이 책은 옛날에(라곤 하지만 2년도 되지 않았다.) 예현이가 읽어보면 좋을 거라고 추천해준 책이다. 보노보라는 모계사회 중심의 동물을 소수, 진보, 약자로 비유하고 침팬지를 다수, 보수, 강자로 비유하여 이야기의 시선을 끌어서 그 당시 사회 현상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데, 그 도마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은 보수와 진보의 구분이 없었다. 갈라진 진보의 목을 쳐냈고, 친기업과 친미를 마치 신의 계시처럼 따르는 보수의 살을 도려내는 글들이었다.

더군다나 자신의 분야가 아님에도 굳이 짚고 넘어가준 소수자들 문제, 여성 문제는 이 글을 읽고 고개를 무척이나 심하게 끄덕이게 만드는 데 한 몫을 단단히 했다.

박근혜 정권이 되면서 (글쓴이의 말을 빌자면) 급격한 우향우는 더욱 진행중이다. 노동 개혁, 역사 국정화 등 사람들의 고개를 아예 오른쪽으로 고정시키고 깁스를 시킬 지경이다. ‘국민들의 철퇴’로 여겨지던 20대 총선 이후에 뭔가 바뀌길 기대하고 있지만, 역시나 나눠져서 싸우기 바쁘고 아무튼 한숨이 나는 현실이다.

오랜 기간 박혀있었던 그 관념을 뿌리뽑기란 어려운 법이겠지. 느긋하게, 하지만 강인하게 미래에 시선을 박고 흔들리지 말아야 하겠다.

재밌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