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디어 존 디어 폴
편지라는 장르는(장르라는 단어를 선택해도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특유의 느긋함과 아련함만으로도 사람들의 감정선을 쉽게 휘어잡는 것 같다. 아마 보통은 옛날의 향수를 그리워하게 될 것이 유력한 장르이기에 그 감정들은 더 두드러진다. 그런데 스마트폰이 난립하고 유비쿼터스 시대가 성큼 다가서고 있는 시대에 편지라니. 편지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한 내 눈은 불신으로 가득 차서 이 책을 째려봤었다.
이 책은 폴 오스터와 j.m.쿳시라는 유명한 소설 작가들이 우정을 나누기 위한 방법으로 편지를 선택했고 그것을 책으로 출판했으며 그걸 번역한 것이다. 사실 이 책을 구매하기 바로 전까지도 이 책을 사야겠다는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정말로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구매였는데 그 원인 역시 즉흥적이다.
뉴욕의 프로그래머 책을 또 간만에 읽던 중이었다. 거기서 나오는 인도계 천재 프로그래머가 쿳시의 책을 읽고 있었고 그 설명으로 프로그래머이던 쿳시는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적혀 있었다. 음. 노벨문학상을 받는 프로그래머라. 다분히 논리적인 프로그래머이지만 창작이라는 부분에서는 소설가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던 나였기에 당연히 구미가 땡겼다. 사실 굉장히 유사한 직업 아닌가. 언어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
아무튼 그래서 생긴 관심을 리디북스 검색으로 표출했는데 쿳시의 책은 단 한권 이것밖에 없었고 결국 나에게 주어진 선택권은 이 책을 구매하는가 마는가 두 가지 뿐이었다. 결과는 아시다시피.
한낱 유흥거리에 불과해야 할 것 같은 편지들은 굉장히 많은 시각을 담고 있었다. 스포츠 영화 정치 소설 등 정말 많고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그들은 토론을 나눴고 그 토론들은 마치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을 닮아 있었다. 치열했지만 타인을 배려했다.
편지이기에 흐릿하게 끝을 맺은 이 책은 삶을 이어간다는 여운을 남겼기에 만족스러웠다. 기승전결이 뚜렷하지 않은 편지글의 또 다른 매력이랄까. 이전에 헤밍웨이의 편지들을 엮은 책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니까. 이 책의 말미에 링컨보다 일찍 태어난 종조부를 가진 전처의 어머니에게서 링컨 이전의 시대를 살던 사람을 알고 있는 사람이 지인이라는 그 기묘한 감정을 기술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내가 이 책을 읽는 동안 꾸준히 느낀 그것과 굉장히 일치했다. 아무래도 헤밍웨이의 글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
아무튼 즐겁게 읽었다. 비록 쿳시가 현대의 많은 것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흑백영화를 그리워하지만(전직 프로그래머인데도 그렇다니. 내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좀 죽는 느낌이다.) 정말 생각해볼 것이 많은 책이었다.
아래는 본문에서 나온 정말 아이러니한 글이다.
1984년 레이건이 재선 선거 운동을 벌이고 있을 때 저는 브루클린의 한 자동차 정비소에 가는 중이었습니다. 브루클린 해군 조선소의 용접공이었다는 운전사는 자기가 속한 노조가 경영진에 의해 분쇄되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제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그 점에 대해 레이건에게 감사해야겠군요. 역사상 가장 많은 노조를 깨부순 대통령이니까요.” 그러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만 어쨌든 저는 그에게 투표할 겁니다.” “세상에 어째서요?” 제가 물었습니다. 그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빌어먹을 빨갱이 놈들이 남아메리카를 접수하는 꼴은 못 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