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우. 정말 길긴 길구나. 이 책을 읽다가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는 게 이해가 갈 정도의 분량이다 ㅋㅋ 그래도 읽다 보면 정말 심취해서 읽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듯.. 퇴근 후 루아를 읽고 남는 시간에 꾸준히 읽어왔는데 어느새 다 읽었다. 음. 다 읽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네. 앞에서 언급한 그 마력이라는 것의 일부분은 아마 역자의 역량 덕분일까? 열린책들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책들은 번역이 잘 되었다고 소문이 나 있다고 하던데 ㅋㅋ 아무튼.

조금씩이라도 틈틈히 고전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주 하는 리디북스의 열린 책들 세트를 옛날부터 구매했음에도 하나 하나 읽기가 참 힘들다. 고전은 활자가 많고 촘촘하기도 하고 또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어느새 흐름을 잃어버리기 십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물론 오직 나의 기준이다.) 그런데 이 책은 별로 그런 감은 없었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정신없이 책에 빠져서 내가 라스꼴리니꼬프가 된 것마냥 가슴이 떨리고 오금이 저는 것이었다.

이 책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참 간단하다. 주인공이 살해를 저지르고 그것을 자수하고 참회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참 험난하기 그지없다. 만약 내가 살인을 저지른다면 이만큼 정신 착란을 일으키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실제로 살인을 해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현실적이다.

뭐, 이런 현실적임은 차치하더라도 이 주인공의 살인 동기가 참 흥미롭다. 그는 휴학중인 학생으로 자신의 어떤 사상에 심히 심취했다. 비범한 사람은 어떤 행동도 용인이 된다. 그 행동들은 어떤 위대한 일을 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고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위대한 일 뿐이다. 지금까지의 위인들은 과정이 아닌 결과로 기억된다. 뭐 이런 골자의 사상인데, 그는 저명한 잡지에 이것에 대한 논문을 실을 정도로 열렬히 이 사상에 동조한다.

참 어려운 일이긴 하다. 타인의 권리를 어떤 상황에서는 쉽게 취할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는 존중해줘야 한다는 사실이. 읽다 보면 어느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나 자신에게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도덕과 법과 질서를 개인이 자체적으로 해체 조립하는 것을 용납하다니.

아무튼 그런 연유로 그는 그 자신에 따르면 기생충과 다름없는 전당포 노파와 그녀의 여동생을 살해하기에 이른다.(여동생은 그야말로 급조된 상황이었지만..) 하지만 그는 그가 자신했던 것과는 반대로 실제로 일이 치러지자 죄책감으로 병이 들고 자신의 친구인 라주미힌의 도움, 여동생의 약혼으로 인한 상경, 뽀리피리의 압박 등 여러가지 일이 발생하고 그는 점점 자신이 비범한 사람이 아닌 범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결코 실마리를 잡히지 않겠다는 마음이 마구 혼재되어 혼란스러운 그의 심정은 참 놀라울 정도로 갈팡질팡한다.

그런 병상의 어느날, 술집에서 알게 되었던 주정뱅이가 마차에 치여 죽고 난 가족을 도와주게 되기도 했는데 이것도 그의 범죄에 큰 작용을 하는데 그건 조금 후에.. 아 내 글도 점점 갈팡질팡.

일단 이 때는 그의 여동생 두냐의 결혼이 화두였는데, 루쥔과 그의 사이가 악화되감에 따라 드러난 루쥔의 속물 근성은 두냐의 결심에 큰 작용을 하게 되고 결국 그들 사이는 파토가 나게 된다. 그리고 처음부터 마음이 빼앗겼던 라주미힌에게 라스꼴리니꼬프는 자신의 여동생, 크게는 자신의 가족을 부탁하게 된다. 이미 심적으로 피폐함이 커진 그는 가족을 그 자신이 더이상 부양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걸 직감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도와준 가족의 창녀인 딸 소냐에게 자신의 사상과 죄를 고백하고, 그걸 엿들은 스비드리가일로프와의 또 다른 이야기가 진행된다. 스비드가일로프는 자신의 성적 욕구를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하는 자로써, 두냐가 가정교사로 갔던 집의 주인이다. 그와 두냐의 예전 이야기도 있지만 일단 이건 넘기고..(길어!) 스비드가일로프는 우연히 들은 그 정보를 통해 라스꼴리니꼬프를 어르고 또한 두냐를 속여 자신의 숙소로 데리고 온다. 그 곳에서 두냐에게 다시 한번 자신의 사랑을 말하고 극단적인 상황으로 그녀를 몰아붙이지만, 두냐의 반항에 결국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욕구 충족에 실패하고, 또한 처음으로 모든 수단을 강구하여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지지 않게 된다. 그 길로 그는 나서서 모든 돈을 청산하고 자살을 한다.

그리고 결국 라스꼴리니꼬프는 자수하라는 소냐의 말에, 그리고 뽀르피리가 자신의 추리는 없었던 셈 쳐줄테니 그럼 형량이 약해질 것이라는 말에, 피폐해진 마음을 이기지 못함에 따라 경찰서로 가서 자수한다. 그리고 형량을 채우던 중 소냐의 헌신적인 행동들에 의해 감화되고 자신의 사상의 결점을 인정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와.. 스토리만 써도 정말 길구나.

인간의 본연의 마음은 악행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주인공과 루쥔과 스비드가일로프를 반면교사로 내세워 하고자 하는 말은 이런 말이 아닐까. 뭐 그렇다곤 해도 어떤 절대적인 순수함을 믿기에는 내가 너무나도 어른이 되었구나. 그러니 절대자를 세워놓고 믿기라도 해야 하는 걸까. 참 어떤 기준을 세우고 그걸 따라간다는 건 힘든 일인 것 같다.

이 책의 라스꼴리니꼬프의 사상과 우리나라 기독교의 사상이 같은 방향을 향한다는 점이 참 웃긴 점이다. 책의 완결은 성경으로 귀결하는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