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페미니즘은 나에게 있어 중심이 되는 이념과 마찬가지가 되어가고 있다. 내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약자이고 내가 그에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적나라한 현실의 폐부를 껴안지 않는다면 내 사랑하는 사람은 날 사랑할 수 없겠다는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않은가 ㅋㅋ 그에 대해 섬세하게 접근해야 했다. 은연중에 내가 휘두를 권력을 이해하려면 내 행동 하나 하나를 보수적이지만 진보적인 시각으로 고찰해야 했다. 알을 깨고 나오는 건 정말 어려운 법이다.

여튼 그런 상황에서 페미니즘 관련 도서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도 필연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페미니즘이 내 중심적 이념이 되어감에도 딱히 이것에 대해 괜찮은 정의를 내릴 수 없다는 답답함도 있었다. 페미니즘을 여성학이라고 해석하는 것에 수상쩍은 저의가 느껴지지만 그것에 대해 반론하기에는 페미니즘의 정의가 내 속에서 정확히 형성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지금 공공연히 만연하는 남성 그 자체를 적으로 돌리고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잘린 성기를 보며 희희낙락하는) 치들에 대한 의문도 상당했다. 권력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내 성기가 잘리는데 즐거운 사람이 있을까. 그러면서 남성과 함께 걸어가겠다는 게 합당할까.

뭐 아무튼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내 나름대로의 정의를 찾을 수 있었다. 벨 훅스는 페미니즘에 대해 여남 흑백논리로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대항해야 할 것은 가부장 제도에 대한 것이지 상대방에 어떤 프레임을 씌워 마녀사냥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의견에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는 백인 우월주의, 엘리트주의를 강력히 비난하며(거기엔 엘리트 백인 여성이 주타겟이 되었다. 그녀는 어떤 성별로 적을 규정하길 거부했다.) 그들이 가부장 제도와 결탁하는 것을 묵인하지 않았다.

이 책은 정말 다양한 관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국 페미니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시간 관점도 그렇고 인종, 젠더, 부모, 결혼, 종교 등 우리를 둘러싼 많은 것들을 포괄하여 비판과 나아갈 점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 덕분에 내 시야는 한층 더 넓어졌다.. 내 협소한 시야는 언제쯤 우주 밖을 바라볼 수 있는 망원경급이 될 수 있을까.

아무튼 재밌었다. 줄긋기에 여념이 없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