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오누님의 컴퓨터를 손보고 얻은 두 책 중의 한권. 낯선 시선 - 메타 젠더로 본 세상을 다 읽었다. 늘 그렇듯이 이런 류의 책은 머리를 식히는 용도로 짬짬히 읽는 편이다. 뭐 여기서 내 독서 습관을 공공연히 밝힐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굳이 밝혀보자면 아침에는 프로그래밍 서적을 읽으며 출근하고 저녁에는 루아 원서를 해석하면서 퇴근한다. 그리고 거기에 벗어나는 책은 루아 원서를 읽은 후에 읽기 시작한다. 뭐 이런 패턴이다. 말하자면 정말 짬을 내서 읽는다. 많은 범위를 한번에 후루룩 마셔버리기가 힘든 패턴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이 책은 그 패턴에 정말로 부합하는 책이었다.

이 책은 정희진씨의 칼럼들을 엮어둔 책이다. 큰 주제들에 맞춰서 쓰여진 날짜에 상관 없이 묶여 있는데 별로 고민해보지 않아서 날짜 순서에 대한 상관관계는 잘 모르겠다. 정말 들쑥날쑥하게 들어가 있는데 아마 저자의 의도가 있긴 할 듯 하다. 말하자면 이명박 정부의 불통을 이야기하다가 박근혜 정부의 무능함을 비판하는 식이다.

이 책의 제목 밑에 작게 붙어 있는 메타 젠더로 본 세상이라는 문장. 그 중에서 메타 젠더라는 말은 참 애매모호하게 느껴진다. 일단 ‘메타’라는 단어. ‘메타’라는 단어는 보통은 그리 친숙할 수 없는 단어겠지만, 프로그래머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익숙한 말이다. ‘메타 프로그래밍’은 프로그래머가 중급 / 고급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언젠가 마주칠 수밖에 없는 프로그래밍 기법이니까. 비개발자를 위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메타 프로그래밍은 프로그램 속에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식이다. 말하자면 프로그램이 또 다른 프로그램을 파생한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텐데 뭐 깊게 설명하자면 끝이 없을테니 여기까지로 만족하는 것으로. 아무튼 이 의미에 대입하여 메타 젠더를 해석해 보자면 젠더가 젠더를 만든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성별이 성별을 만든다? 확 와닿지는 않는 말이다. 그러니까 남자 / 여자의 이분법적인 사고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그렇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젠더는 단지 외적인 것만을 일컫지 않으며 그렇게 될 수도 없다. 물론 그렇기를 바라는 이들은 젠더 권력을 손에 쥐고 휘두르지만.

그렇다면 메타 젠더는 무슨 의미일까. 우리는 늘 젠더 권력 속에 속해있다. 하지만 그 속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것이다. 간단한 예로 남성과 남성 사이의 젠더 권력 관계는 어느 쪽이 좀 더 보편적 남성상에 닮아있느냐에 달려 있다. 남성과 여성? 이제 언급하면 입만 아픈 가부장제로 엮여 있다. 물론 이건 정말 단적인 예이고 개개인은 정말 수많은 젠더 권력에 속해있다. 모두 다른 젠더상을 거미줄처럼 엮어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젠더가 젠더를 만드는 현상. 강자가 약자를 만들고, 약자가 더 약자를 만드는 이 보편적인 사회상. 하지만 그 프레임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프레임을 알지 못한다. 마치 알 껍질을 깰 생각이 없는 것처럼.

문제 해결의 시작은 문제를 의식하는 것부터다. 또 한번 프로그래밍에 비유하자면 버그를 잡기 위해서는 우선 버그를 인지해야 한다. 문제를 더 빨리 의식하기 위해 유닛 테스트를 하고 QA팀을 꾸리는 것이다. 그런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팀은 버그 투성이의 게임을 출시할 수밖에 없게 된다.(저 트리 오브 세이비어를 보자.)

책 내용은 컬럼들의 묶음이라서 모두 파편화 되어 있지만 이 모든 글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젠더가 젠더를 재생산하는 이 구조를 인식시키고자 하는 정희진씨의 의지가 가득 담겨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 젠더는 사회 구조 속에도, 지금 이슈가 된 뉴스 속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늘 새롭게 생산되고 있다. 물론 권력이라는 폭력을 동반한 채로.

재미있게 읽었다. 내 머리를 깨이게 하는 글도 많았고, 좀 더 설명을 요구하고 싶은 글, 더 공부하고 싶은 글들도 있었다. 생각날 때 아무 페이지나 펴서 읽어도 즐거울 듯.

다음 책은? 이오 누님에게 받은 두 번째 책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