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책을 하나 다이렉트로 읽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앉은 자리에 다 읽어버린 책. 위로의 레시피. 뭐, 가벼운 책이라곤 해도 선택지가 너무나 좁았다. 서울에 올라와서 산 책들이 대부분 개발 서적 뿐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이런 에세이 집을 굉장히 좋아하는 나였는데, 어쩌다 보니 그런 취미를 슬그머니 접어버린 탓이다. 개발에 대한 미묘하게 광적인 집착이 이런 사소한 부분들에서 드러나는 바이다.

다 읽고 나니 뭐,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특히 과거를 추억하는 글들이 많았기 때문에 과거를 꽤 특별하게 여기는 나에게 잘 맞는 듯한 느낌이 든다. 늘 한발자국 앞을 고민하며 달려가던 최근의 나에게 제동 장치를 마련해준 꼴이랄까.

예전의 글을 읽어보니 정말 엄청 센치했었나보다. 이 책을 읽고 옛날 생각에 푹 젖어버렸던 모양. 물론 객관적인 척 하는 지금도 사실은 꽤 과거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립고 아련한 이 기분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까. 이 기분을 만끽하고 싶어서 복고가 유행하고 응답하라 시리즈가 이름을 떨쳤을 것이다.

그렇다곤 해도 전혀 발전하지 않은 모습을 보일 순 없지. 이 책의 단점을 조금 언급해볼까.

‘옛날 사람’이라는 편견을 가지긴 싫지만 이 책의 저자분이 과거를 추억하는 모습에서는 과거를 너무나 미화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물론 과거란 자신에게 무척 의미가 깊기 때문에 부정하고 싶진 않겠지만. 술집에서 노래를 불렀던 옛날을 이야기하는 에피소드는 특히 노골적이었다. 조용히 해달라고 하는 옆 테이블의 어린 손님들이 불쾌했고, 옛날의 맛을 몰라서, 놀줄 몰라서 그렇다고 마음 속으로 일갈해버리는 저자의 마인드는 말 그대로 꼰대… 뭐. 그럴 수 있지. 과거의 망령이란 한치 앞도 못 보게 할 줄도 아는 법이다.

또한 마지막, Part3. Beyond The Recipe에서는 음.. 뭐라 형언하기 힘든 글들이 이어진다. 딱히 에세이처럼 느껴지지 않는 몽환적인 소설들(아마도)의 향연이었는데, 이들은 사랑을 주제로 한 글들이었다. 정말.. 사랑의 아픔과 슬픔을 끊임없이 노래하는데 아마 십대라면 그 감성 속에 푹 빠져서 자신의 첫사랑을 그리겠지만.. 지금의 내 눈에는 뭐랄까, 정말 상업적임을 노리고 쓴 글처럼 보였다. 사실이 아니라면 죄송합니다. 저자님. 뭐 그렇게 느껴진 덕분에 슥슥 그냥 넘겨버렸다. 사실 사람 사이의 사랑에서 사유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없더라도 있게 느껴질 정도의 깊이의 사유들이 넘쳐난다. 그런 느낌이었달까.

뭐 아무튼 예전에 비해 책에게 조금 독한 말들을 쏟았는데, 앞에서 언급했듯이 기본적으로 나도 과거를 너무나 사랑하는 인간이다. 과거를 머금게 해준 이 책은 분명히 나에게 잘 맞는 책이었다.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