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읽어오던 책이었는데, 오늘 삘 받아서 또 한번에 확 읽어버렸다. 로캐넌의 세계. 어둠의 왼손과 빼앗긴 자들에 이어 세번째로 완독한 헤인 연대기의 이야기이다.

래형이 형이 줬던 바람의 열두 방향, 르귄님의 단편집에서 강렬한 첫 번째 이야기로 등장했던 ‘샘레이의 목걸이’의 연장선이 되는 이야기가 바로 이 이야기이다. 더군다나 헤인 연대기의 대망의 첫 번째 시작이기도 했고.

이 책은 지금까지 읽었던 헤인 연대기 책 중에서 가장 판타지 느낌이 강렬했다. 오버 테크놀러지가 청동기 시대와 맞물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애초에 샘레이의 목걸이 자체도 그걸 상정해서 그려진 이야기인데(상대성 이론의 시간 지연을 잘 활용하여 적절한 비극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르귄님은 그 괴리감과 이질감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나보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제목 그대로 로캐넌. 이 행성을 조사하는 조사원의 일원이었는데, 샘레이의 목걸이 이야기에서도 그는 등장한다. 그 인연으로 그는 조사를 위해 이 행성에 발을 딛게 되는데, 동일한 기술력을 가진 어떤 적(연맹에 대한 반란 단체로 여겨진다.)들에 의해 그의 동료들과 우주선, 통신 기구 일체를 모두 잃게 된다. 그래서 그가 이 행성의 종족들을 이끌고 함께 그 적들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바로 주된 스토리. 그 끝은 굉장히 비극적인데.. 아무래도 그걸 명시하는 것은 혹시라도 이 책을 읽고 싶어하는 다른 분들에게 폐가 되기 때문에 멈추기로.

이야기 중 모지언, 군주의 자격을 완벽히 갖춘 인물이 늘 일행을 이끌어 왔는데 로캐넌이 텔레파시 능력을 동굴의 어떤 자에 의해 얻게 된 이후 그 군주의 자격이라는 것이 반전되는 것이 로캐넌의 심경의 변화를 나타내는 것 같아서 참 인상깊었다. 그 이전까진 스타로드라고 불리지만 늘 모지언의 리더십에 의지하고만 있던 피동적인 인물처럼 그려졌었지. 그리고 그 후엔….

한 사람의 운명이 중요치 않다면, 무엇이 중요합니까?

참 가슴을 울리는 말이다.

아무튼 전형적인 모험물의 형식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모험 판타지를 좋아했던 나로써는 굉장히 친근했다. 그리고 빼앗긴 자들에 의한 결과물인 엔서블이 굉장히 중요하게 쓰였다는 점이 참 재미있었고. 여러모로 쉽게 즐겁게 가볍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르귄 누님 사랑합니다.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