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인간적인
부제는 대한민국 개발자로 산다는 것. 사람이란 참 간사하다. 나의 어려움을 다른 사람에게 투영해서 나도 괜찮다.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위로받고 싶어한다. 사실 그런 위로가 필요할 때가 자주 있다. 나 혼자 고립되어 있다고 느낄 때, 다른 프로그래머들도 나와 같은 위기감을 느끼는지, 압박감을 겪는지 등. 그렇다는 말 한마디를 듣기 위해서 책 한권을 통독하곤 한다. 이번에도 사실 그런 위로를 바래서 이 책을 꺼내들었다.
개발자에 대한 책은 대충 두 부류로 나뉘는 것 같다. 자신의 성공담을 널리 알려 다른 개발자들도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불어넣어 주는(혹은 자괴감을 심어주는) 책. 이 부류는 자신의 기술적인 자산을 맘껏 뽐내며 나는 이런 쪽을 파고 들어 이런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은근히, 혹은 대놓고 자랑한다. 그리고 나는 그걸 보며 공부 의지를 불태우곤 한다. 나도 할 수 있다. 곱씹으면서.
그리고 두 번째 부류의 책은, 개발자의 어려움을 잔뜩 토로하며 그것에서 문제 의식을 끌어내 자신의 철학과 결부시키는 책. 이런 류의 책은 사실 어떠한 사유들로 가득 차 있긴 하지만, 대부분 협소한 시각이 아닌가 싶은 느낌이 들곤 한다. 다들 자신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이 바로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곤 하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쓰더라도 그것보다 더 좋고 멋진 철학적인 탐구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결론을 이야기 해 버렸네. 이 책은 후자의 책이다. 자신의 입장에서 어떠한 인문학적인, 철학적인 고심을 잔뜩 배설해 두었지만 뭐랄까 좀 협소하게 느껴지는, 지적인 뽐냄을 위한 책이 아닌가 싶은 책.. 뭐 그렇다곤 해도 중년의 프로그래머의 일상을 잠깐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긴 하다. 미묘하게 꼰대같고 미묘하게 자아성찰적이며 미래를 두려워하지만 현실도 도피하고 싶어하는 전형적인 대한민국의 직장인이 그래도 철학과 인문학 속에서 어떤 길을 찾아내고자 하는 모습은 꽤 감동적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개인 생활을 중시하는 요새의 젊은 프로그래머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둥의 생각은 자신을 직장과 동일시했었고,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저자의 말과 꽤 상충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자신의 삶을 누리는 것도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도 책을 읽고 책을 쓰며 자신의 삶을 도모하는 모습에서 선배님의 작은, 하지만 넓은 등을 볼 수 있었다.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