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간 조금씩 읽은 책, 인생학교 섹스편이다. 제목에서 조금 기대했다. 섹스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이나 심도깊은 이야기를 해주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사회는 확실히 섹스, 정확히 말하면 몸에 대해 굉장히 보수적이다. 감추고 싶어하고 드러내길 꺼리게 만드는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철학이라면 당연히 이 당연한 논의를 격파하며 시작하겠지. 그리고 이 감추고 싶어하는 문화에 대해 역설하며 자연적이지 않다는 걸 어필하겠지.

사실 이 정도까지는 예상하고 책을 펼쳤다. 그리고 책은 내가 생각한 것과 거의 흡사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뻔했다. 독자는 갑이고 저자가 을이라고 정희진님이 말했었다. 오만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 전에 파주 지혜의 숲에서 읽었던 인생학교 일편에서도 느꼈지만 아무래도 이 시리즈는 그렇게 심도 깊은 이야기는 크게 다루지 않는 모양이다. 그 책도 그렇지만 이 책도 사유보다는 심리학에 가까운 내용들이 다수다. 그리고 그 때문에 의도했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페미니즘적 관점은 거의 배제가 되어 있는 편이다. 현재 사회의 심리를 꿰뚫어야 하기 때문에 대중적인 시각으로 대중적인 ‘남자’와 ‘여자’의 입장을 다루어야 하기 때문이겠지. 중간 중간 들어가 있는 가상의 부부의 예 중 남자의 외도에 대해 설명하며 이야기하는 외도의 주체가 되는 여자가 ‘순종적인 페미니즘적이지 않은 여성’으로 설정한 것이 아무래도 비꼬는 듯한 느낌이 조금 있었던 것이 유일했달까.

아무튼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일반적인 1:1 연애의, 결혼의 부정적인(부자연스러운) 측면을 많이 다루었다는 점은 주지할 만하다. 부의 되물림과 연관된 결혼의 역사가 부자연스러움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하지만 보통의 시각으로는 굉장히 파격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반감이 들었던 부분. 종교계의 경고 부분이다. 종교의 ‘성을 억압하는 측면’을 어떻게 보면 포장하는 입장을 고수하는 글인데, 성에 대한 욕망을 종교가 어느 정도 억압해주는 것은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말을 길게 풀어 쓰고 있다. 인간은 성에 대한 욕망을 결국엔 이길 수 없다는 점을 견지하는 입장인데, 그렇다면 앞에서 그가 말했듯 거의 헐벗고 해변을 거니는 여자를 보고 충동을 참아내는 것은 어떤 상황일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시대가 더 이상 신을 믿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인류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나 질서와 사랑이 충만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억압은 필요하다는 것, 이 점만은 인정해야 할지 모른다.]

강제적인 억압은 폭력이다. 인간은 억압을 선택할 자유 또한 가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 종교의 선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일테지. 그렇다고 인류가(종교를 믿지 않는 자를 포함하는) 억압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내비치는 것은 아무래도 부당하다. 말이 안된다.

뭐 여튼.. 책이 이렇게 또 한 권 나를 통과했고 나는 생각했고 변했다. 즐거웠다.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