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의 중고 서점 나들이에서 우연찮게 업어오게 된 책, 웬즈데이. 요새 소설은 통 일부러 사서 읽지 않는 와중에 이 책을 사게 된 이유는 대문짝만하게(사실 그렇게 대문짝만하진 않았다. 나의 뇌리에 그렇게 느껴졌다는 말이다.) 적혀있는 저자의 이름 때문이다. 저자 이름? 에단 호크. 그 영화배우 에단 호크라고? 하면서 펼쳤는데 책날개에 그 에단 호크의 사진이 걸려있었고, 난 책을 장바구니에 넣고 있었다.

사실상 영화 배우의 네임벨류를 보고 구매한 셈이다. 아마 에단 호크 역시 책을 쓰면서(여러 책을 써왔더랬다. 이건 두 번째 책이더라.) 나같이 편협한 시각으로 책을 구매하고 열광하는 사람들의 등쌀에 시달려 왔겠지. 하지만 어쩌랴. 그 인기 역시 그의 일부이고 생활일텐데. 이 책 역시 그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일테고 그 경험의 일부(혹은 대부분이)가 영화배우로써의 그일테다. 저자와 배우 에단 호크를 분리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아무튼 원체 유명한 사람이니 그의 이름을 언급하는 정도로 넘어가자. 사족을 하나 달자고 하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비포 선라이즈의 남자 주인공이고 그 때문에 그에 대한 호감도가 크다.

그가 쓴 입맛을 더 다시기 전에 정말 책에 대한 내용으로 넘어가자. 책은 연애와 결혼의 경계선에 있는 남자와 여자를 다루고 있다. 결혼을 다루면 필연적으로 가정, 그 집단 공동체에서 비롯된 고통이 따라붙게 된다. 그걸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그 공동체가 개인의 우위에 서게 되는 모든 폭력들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것. 어찌 보면 평이한 설정이지만, 이 책은 줄곧 그 고통을 정말 끊임없이 서술하고 있다.

남자 주인공 지미와 여자 주인공 크리스티는 전형적인 연애를 이어나가는 1년 반의 연인이고 그 전형적인 연애의 끝을 시작으로 이 소설은 시작된다. 지미는 크리스티에게 헤어짐을 선언하고, 크리스티를 잊지 못하고, 크리스티를 잡으러 간다. 결혼이라는 볼모를 붙들고. 크리스티는 헤어지고 지미를 잊지 못하고, 지미를 잊으려고 고향으로 돌아가려 한다. 자신에게 지미의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채 밝히지 않고. 지미의 전형적인, 어린아이같은 남성성, 그리고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폭력들은 결혼 제도 아래서 남성들의 모습을 그대로 빼다 박았고, 크리스티는 그 미묘한 폭력에 어쩔 수 없이 수긍하고 만다. 아이를 가진 여성은 더더욱 약자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은 결혼을 하기 위해 자신들의 어린 날의 고통들과 마주한다. 정신이상이 왔던 죽은 아버지와 매혹적이라 늘 남자가 끊이지 않는 어머니를 가진 지미, 정치인으로써 고집이 강한, 그래서 이혼하여 혼자 크리스티를 키운 크리스티의 아버지. 그들의 부모 역시 결혼 생활은 평탄하지 않았다. 그 뻔히 보이는 고통 속으로 들어가는 결혼식은 지미의 어린 날의 멘토, 메튜 신부님의 주례로 조촐하게 끝난다.

결혼식 후 신혼 여행으로 뉴올리언스로 간 그들은 크리스티의 유산 위험과 마주하고 그 단 한번의 고비로 그들의 사이는 다시 흔들린다. 지미는 폭력을 휘두르고 탈영범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채 감옥에 갇히고 크리스티는 병원으로 간다. 사랑은 결혼이라는 족쇄로 끊임없이 시험당한다.

그리고 다시 만난 그들. 그들의 아이가 온전함으로써 그들 사이는 다시금 치유되고 그렇게 이야기는 끝이 난다. 헤피 엔딩일까? 그들에게 결혼의 시작부터 찾아온 이 시련은 아마 평생토록 이어질 것이다. 남성성을 지향하는 지미의 관계 속 폭력에 크리스티는 늘 시험당할 것이다.

적나라하게 희망이라곤 보여주지 않는 이야기였다. 에단 호크의 결혼 생활에 대한 토로일까? 아무튼 가족 관계에서 오는 모든 이들의 아픔(부모님은 물론 자식인 지미와 크리스티까지 불행함을 안고 있다.)이 크게 부각되는 글이다.. 결혼이 꼭 종착점이어야 할까? 크리스티가 고향으로 내려갔다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들이 가시질 않네.

아무튼 평이하고 괜찮은 소설이다. 그의 이름이 작용했기 때문에 읽은 책이긴 하지만.. 아무튼. 나 역시 제너럴리스트를 꿈꾸고 그런 자들이 늘 나의 시상을 자극하곤 한다. 대단하구나, 에단 호크.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