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책을 다 읽었다. 다시 요새 프로그래밍 관련 서적 외에는 손을 잘 안대기 시작했기 때문에 완독하는 책이 점점 줄어들어 이제는 독후감을 올리는 일이 개발일지 올리는 일보다 더뎌졌다. 독서에도 분위기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겠지. 지금의 분위기는 타 분야는 암전 상태.

이번에 이 책을 다 읽게 된 것도 꽤나 노력을 거듭하여 가능한 성취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사실 프로그래밍과는 관계 없지만 개발과는 관계가 있는 책이기도 하고.

이야기라는 것이 그냥 흐르듯이 끄적이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사실 어느 정도는 긍정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역시 여러 이야기를 겪으면서 알게 된 것은 이야기의 그 모든 소품들에는 분명한 연출적 의도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영화든 드라마든, 소설이든 그 무엇이든 주제와 관련이 없는 소품과 이야기는 그 전체적인 흐름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함은 뭐, 딱히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철저한 계산 속에서 이루어진다니. 내가 생각하던 느슨한 방식과는 너무나 다르다. 계산적이고 공학적이다. 인문학이 공학과 어우러져야 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지점을 일컫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수학적이다.

결국 나도 일련의 플롯 제작 중에 이런 니즈를 가질 수밖에 없었고, 더군다나 특히 단편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이 책을 손에 쥐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책을 쥐게 된 연유를 아직 밝히지 않았네. 이 책은 회사의 길고 긴 책장 중 한켠에 꽂혀있던,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책 중의 하나이다. 아마 기획자들을 위한 책이겠지. 아무튼 나의 이런 니즈와 맞아떨어졌고 내 손에 들어왔으며 한동안 천천히 읽었다.

사실 거의 대부분을 오늘 읽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마음 먹고 책의 끝장까지 스플린터처럼 내달렸다. 요새의 분위기와 달랐기에 조금 힘들었지만.

이 책은 1부 기초, 2부 중간 단계, 3부 씬의 구성, 4부 초점 유지하기, 부록 순의 대주제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뭐, 딱히 추가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간결한 이름이다. 초반에는 전체적인 구성에 대한 조언, 초중반 부분부터는 전체적으로 극을 이루는 순서대로 설명하고 그 순서를 꾸미는 데 치중한다.

이 책의 흐름을 따라가며 느낀 것은 뭐, 이미 전술했고. 그 공학적임에 감탄하며 책을 덮었다.

느슨한 뇌를 조이는 데 효과적인 책이었다. 덕분에 내 이야기도 한층 풍성해질 전망이고. 아이디어가 마구 샘솟는 것이, 역시 어떤 자극이 없으면 뇌는 정적인 모양이다.

간만에 재미있었다. 독서에 다시 불을 붙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