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미뤄뒀던 소설 읽기 시간을 가졌다. 어제부터였나. 이번에도 그런 시기가 돌아왔던 것이다. 기술 서적은 지겹고 뭔가는 읽고 싶고. 하지만 뭔가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나에게 딱 맞는 무언가를 찾아 헤메는 시기. 그럴 때는 역시 소설이 딱이지. 소설이라면 마침 딱 읽어야 할 한 가지 책이 있었으니, 바로 이 책이다. 위쳐.

왜 위쳐여야 하는가. 그 암울한 리얼리티도 한 몫을 하지만, 정치의 큰 축을 차지하는 ‘여자 마법사’라는 직위와, 지저분한 일을 도맡아 하는 ‘남자 위쳐’의 현실을 비꼰 메타포가 꽤 흥미롭기 때문이다. 나의 흥미를 자극하는 지점은 즉, 내가 그리고 쓰고 만들고 싶어하는 어떤 것이라는 뜻이다. 어떤 이야기든 나의 소재로 화하는 인사이트로 동작한다는 게 나에게 강제성을 부여하는 느낌이긴 한데.. 그래도 뭐, 역시 즐거우니까 괜찮으려나.

이번 게롤트의 이야기는 시리가 어떤 위험에 처해 있음을 인지한 게롤트와 예니퍼가가 시리를 돕기 위해 움직이던 중, 다시 만나 서로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는 데서 끝나게 된다. 느낌상 굉장히 짧았는데, 하나의 내용을 절반으로 나누었기 때문이리라.

이 소설 속에서 ‘경멸의 시간’ 이라는 부제는 여기 저기서 정신 사납게 등장한다. 마법사들 속의 위쳐, 큰 위험의 소용돌이 속의 그들을 은유한다. 빌게포츠의 어떤 협박 비슷한 협상은 예니퍼의 별거 아니라는 듯한 대사 이상으로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해지게 만든다. 그가 지키는 중립이 항상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앞으로의 이야기는 역시 더 흥미롭겠지? 그래도 게임을 하면서, 인터넷을 덕심으로 뒤지면서 어느 정도 내용을 읽었던 연유로 몇 가지의 스포를 이미 숙지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 다른 의미로 흥미롭다고나 할까.

여튼 약자와 강자 사이를 이리 저리 배회하는 위쳐, 그리고 중립을 자처하는 위쳐의 행동이 어떤 결말을 초래할까. 그 결과보다 과정이 더 궁금해지는 것은 역시나 나의 흥미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겠지? 나도 풀어가야 하는 이야기가 있으니까.

오랫만에 소설을 읽으니 머릿 속이 맑아지는지 복잡해지는지 참 애매하다. 인문은 여러 지점에 걸쳐서 나에게 이야기를 걸어오는 것 같다.. 아무튼 기술 서적만으로는 나의 세계가 넓어지지 않는다는 점은 확실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