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불식간에 읽히는 책, 가벼운 책, 에세이. 내가 경계하는 책들을 말해보라면 가장 먼저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이런 것들이다. 물론 어떤 이들에게는 자신과 다른 남의 이야기가 어떤 동기 부여로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들의 꿈과 희망을 타인의 거울에 비춰보며 꿈을 키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꿈이 늘 긍정적으로 성장하면 참 좋을 테지만, 대게는 곧 거울을 걷어내면 드러나는 현실에 그만 푹 꺼져버리고 마는 빛 좋은 개살구가 되게 마련이었고, 이 말은 나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어떤 근본이 되는 뿌리가 없으면 아무리 치장을 한다고 해도 의미가 없을텐데, 그 치장의 한 방편으로밖에 생각되지 않아서.. 아무래도 그래서, 날이 선 눈으로 글 사이를 배회하곤 하는 나이다.

그런 내가 마치 전자렌지에 인스턴트 음식을 돌려먹는 심정으로 펼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 하고 은근 나를 자극하는 제목의 책.

결론부터 말하자면 꽤 인상 깊은 책이었다. 가벼운 책이 아니라는 의미는 아니고. 분명히 가벼운 책이다. 하지만 앞에서 경계했듯이 근간이 되는 부분은 건드리지 않고 자극만으로 나를 움직이게 하려는 의도가 옅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나의 뿌리를 더 견고하게 만들고 싶어하는 눈치였다고나 할까.

글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마치 프로그래밍의 언어를 기술하는 것처럼, 타자를 치는 것처럼 글 역시 나에게 어떤 방편일 뿐이지 그 자체로 목적이 되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옛날, 중고등학생 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그리고 지금의 글을 본다면 과연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그렇게나 치열하게 글에 대해 고심하고 끄적이고 나아갔던 나의 눈에 과연 지금의 이런 잡쓰레기같은 글들이 만족스러울까? 긍정적으로는 생각하기 어려울 것 같다. 불필요한 수사와 번역투가 가득한, 불편함을 잔뜩 야기하는 글들. 그리고 오직 자기 자신의 지적 유흥만을 위한 전혀 보편적이지 않은 글들.

하지만 이 책은, 저자는 달랐다. 작가가 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편의 편린을 모으고 모아 사람들의 인사이트를 자극했다.(그런 부분에서 나의 보수적인 면을 다시 발견할 수 있었는데, 상업적인 면과 SNS의 소비적인 짧은 글들에 대한 생각들이 바로 그런 면들이다. 당연히 작가라면 상업을 위해서도 움직여야 할텐데 나는 왜 그리 전통에 얽메이는가. 이 보수 꼴통.) 꽤 효과적으로. 그래서 내가 꽤 진지하게 이 책의 독후감에 임하게 만들 정도로.

뼈를 맞았기 때문이다. 내일이 되면 멍이 들어서 가슴을 문지르며 잠에서 깨어날지도 모르겠다.

이 가벼운 책에 꽤 많은 줄을 그었다는 점이 그 것을 반증하고 있다.

글을 잘 쓰고 싶으면 글을 많이 써야 한다. 이 말은 글을 많이 써야 한다는 말이지, 배설을 많이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코딩에도 글을 쓰는 것과 맞닿아 있는 지점이 제법 존재한다. 강경하게는 코딩을 글을 쓰는 작업에 비유하기도 하니까. 생각해보면 즐겁게 코딩하고 리펙토링하고 컴파일하는 작업들의 절반만큼이라도 나의 이 기록들에 쏟아부었다면 아마 꽤 괜찮은 책을 하나 낼 수도 있었지 않을까? 근데 나는 왜 늘 코딩과 글을 분리해서 생각했을까.

재미있었다. 진지함도 뭣도 없는 글을 의무감에 끄적이는 나에게는 굉장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