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간히 독서광들의 글을 읽게 된다. 그 글들에 적나라하게 표현되는 독서에 대한 열망이라던가 순수한 즐거움은 일단 재쳐두고. 그 글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하게 되는 한 특징이 몇 가지 있다는 점이 재미가 있는데, 그 중 한가지가 슬슬 내 몸에도 체화되고 있다.

그 특징이란 뭐, 단순하다.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고 있다는 점이다. 저번의 이동진님의 책에서도 나왔지만 독서광들은 책을 여기저기 흩어놓고 그날 보고 싶은 책을 손에 집히는대로 집어서 읽는 것을 즐긴다. 그리고 그건 요새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책을 다양하게 동시에 읽고 있자니 드는 생각. 왜 예전에는 한 권을 다 읽고 다음 책으로 넘어가려고 굳이 고집했었을까. 책 한 권을 진득하게, 억지로 읽는 건 지적 노동이 아니라 그냥 노동에 불과할 때가, 그런 지점이 반드시 있었는데.

아무튼 그런 형식으로 여러 책을 읽고 있는데 그 중 한 권을 드디어 끝냈다. 길고 긴 연휴 중에 한 유일한 생산적인 활동이랄까. 미뤄뒀던 게임들의 엔딩을 보고 영화를 보고 데이트도 하고 뭐 이런 것들을 차치하고. 사실 이런 것도 문화사대주의의 한 형식이다. 게임이, 영화가, 데이트가 어때서? 그 속에서 어떤 철학적인 사유를 이끌어낸다면 그것도 나름 훌륭한 지적 생산 활동이 될텐데.

다시 아무튼.

이 책은 영어 공부에 대한 책이다. 영어에 대한 내 오래된 불만족을 과연 이 책은 풀어줄 수 있을까? 뭐 이렇게까지 생각한 것은 아니고 사실 정기적으로 책을 이것 저것 골라서 사는 와중에 얻어 걸려 구매한 책이다.(쿠폰 등을 적용하려면 일정 금액 이상을 구매해야 하니까. 전형적인 마케팅에 완전히 농락당한 셈이다.)

결론적으로 책은 무척 재미있었다. 언어를 그저 언어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에 묶인 여러가지 역사, 철학, 문화 등을 어필하며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공부할 때는 그 모든 것들을 일정 수준 이상 공부해야 고급스러운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 모든 인문학적인 내용들 모두 내가 고루고루 갖추고 싶은 것들인데다가 그 모든 것들이 모든 문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음을 다시 한번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그런 점들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지점에서 영어가 인문학과 엮여 있다는 점에 경악할 수 있어서 재밌기도 했고.

천천히 읽어왔기 때문에 조금 부족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는 게 늘 완독 후 드는 아쉬움이다. 이 책도 그런 아쉬움이 범벅이었는데, 각 잡고 읽는 건 역시 아무래도 힘들고, 다시 한 번 읽던가 이 저자의 다른 책을 한번 더 읽어보는 게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든다.

연휴가 길어지는 만큼 내 삶도 어영부영 흘러가는 느낌이다..

그래도, 간만에 또 한 권 읽었네.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