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문장 수집 생활
요 최근 책을 이리 저리 저질러 놓기를 시도해보고 있다. 내 독서 습관은, 원래라면 한 권을 진득하게 다 읽을 때까지 계속해서 읽어버리는 형식인데, 아무래도 지겨워도 뭔가 의무감을 가지고 계속 읽게 되는 게 지속되다 보니 집중력이 떨어지는 구간이 생긴다는 한계가 있다는 걸 통감했기 때문이다. 많은 독서광들의 독서 습관에서 공통되는 부분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다이어그램을 그려서 가장 중간에 있는 걸 꼽으라면 아마 이 습관이지 않을까 싶은 게 지금 시도해보고 있는 ‘책 여러 권 동시에 읽기’.
그래서 이 책을 읽다가 저 책을 읽다가 해봐야지, 싶어 기존에 읽던 과학자의 철학노트를 잠깐 접어두고 이 책, 문장 수집 생활을 함께 펼쳤다. 근데 함께 펼쳤다는 말이 무색하게 이 책을 먼저 다 읽어버렸네. 이 책을 읽는 중간에 과학자의 철학노트는 펼쳐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무래도 가벼운 주제가 쉽게 읽히고, 쉽게 손에 잡히는 법인 모양이다. 결국 여러 책 함께 읽기는 좀 실패한 감이 없잖아 있다..
우선 책 이야기로 넘어가자. 이 책은 내가 생각했던 그런 책은 아니었다. 제목만 보면 문장을 수집하는 방법, 즉, 책을 읽으면서 좋은 문장들을 캐치하고 수집하는 실용적인 책일 것으로 읽히는데, 실제 내용은 ‘에세이 + 카피라이터로써의 팁’에 가까운 형태였다. 실용 서적과 에세이 사이에는 꽤 넓은 간극이 있으니까 실망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에세이는 요 최근 왠지 자기계발서적과 미묘하게 섞여있기 때문에 잘 솎아내기가 귀찮은 것도 한 몫을 하고.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이 책, 꽤 괜찮다. 나에게 새로운 안목과 동기부여를 제공해준 책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책은 좋아하지만 책에서 많은 걸 뽑아내는 것은 잘 못하는 나로써는 늘 책을 다 읽고도 채워지지 않는 뭔가를 느끼곤 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선 그 채워지지 않는 뭔가가 바로 ‘기록’이라는 걸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독서광들의 책은 책을 읽은 건지 책에 공부를 한 건지 모를 정도로 수많은 표식으로 물들어 있는 반면, 내가 읽은 책은 새 책과 구분하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건 높은 확률로 휘발성 메모리에 기록한 정보가 되었다. 자고 일어나길 반복하면 남아있는 것은 몇 마디의 글귀 뿐, 혹은 전혀 남아있지 않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이 책의 저자는 좋아하는 문장들을 ‘수집하고’ 그걸 토대로 카피를 작성하는 예시들을 에세이와 더불어 잘 표현했다. 그리고 강조했다. ‘수집’. 책 제목부터가 그걸 강조하고 있다. 수집하려면 표본을 채취해서 그것을 보관하는 과정을 상상하게 되는데, 문장도 그런 과정을 충분히 거칠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 또 강조한다.
그래서 나도 이제 해보려고 폼을 재고 있다. 책에 줄을 긋는 건 꽤 해왔으니까, 이제 차근차근 그 표본들을 수집해서 문서화 시켜야지.
내 패턴에 또 하나의 변화가 일어난다. 환경에 맞춘 진화의 과정과 흡사하다는 점이 재미있다.
독서는,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