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내가 발제를 맡은 책, 라프 코스터의 재미 이론이다. 원래라면 독서 모임을 가지고 난 이후에 독후감을 써야 하겠지만 짧은 책인지라 너무 빨리 읽어버렸고, 이번에는 내가 발제를 맡기도 했기에 정리도 할 겸 간단하게 독후감을 써보기로 했다. 저번주에 이미 다 읽었지만, 내용 정리를 하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릴 정도로 읽기가 쉬운 책은 아니었다. 그 이유는 명쾌했다. 저자가 인문학적 철학적 담론을 펼치는데 그 변역의 질이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눈에 쉽게 박히게 자연스럽게 된 번역이 있고 정말 차근 차근 읽어야 소화 가능한 질긴 번역이 있는데, 이 책은 후자였다. 내가 오래전 판본을 읽었기 때문에 더 그런걸지도 모르겠다. 개정판의 첫 부분을 읽어보니 과연 번역이 달랐는데 과연 어떨런지. 뭐, 그래도 오독을 유발하는 치명적인 문제는 없다고 가정해도 되겠지?

이 책은 저자의 ‘게임’과 ‘재미’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조곤조곤히 옮겨둔 책이다. 게임 개발자 아니랄까봐 ‘너드’의 느낌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유머러스한 부분 하며 오른쪽 페이지를 늘 장식하고 있는 삽화 하며.

저자의 할아버지에게 게임은 세상을 발전시킨다는 것을 설득시키고자 하는 것이(늦었지만 말이다) 주 골자이다. 뭐, 동의한다. 지금까지도 게임 개발을 하고 있다고 하면 ‘게임 많이 하겠네?’라는 말을 듣는 세상이니. 소설 쓰면 ‘소설 많이 읽겠네’, 영화 찍는다 하면 ‘영화 많이 보겠네’, 같은 말 속에 다른 질감이 느껴진다는 것이 재미있지만 그 모든 게 사실은 자연스러운 사회적 폭력으로 귀결된다. 세상을 나아가는 데 힘쓰지 않고 골방에 틀어박혀 혼자 재미 보고 있네? 묻는 사회.

저자는 게임을 정의하며 뇌, 인지이론과 연관지어 패턴을 설명한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아는 것을 패턴으로, 모르는 것을 소음으로 정의한다. 모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소음과 비견할 정도의 스트레스라는 것이다.

그리고 점차 패턴을 파고드는데, 게임에 적용된 패턴이 쾌감으로 작용하는 과정, 그리고 그것이 희석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이야기한다.

패턴을 못 찾거나, 너무 쉽게 찾거나, 질적으로 부족하거나, 양적으로 부족하거나, 너무 과하게 많이 변화하거나, 결국 마침내 모든 패턴을 찾아내 게임을 완결짓거나.

이 모든 것을 그는 ‘배움’이라고 말한다. 게임이 본질적으로 현실의 모형이라면 게임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현실의 반영이라고 말하며, 아직까지 고전적인 패턴만을 가르치는 게임의 현실을 지적하며, 여전히 돌을 던지고 궤도를 판단하는 기술을 가르치기보다는, 지구 온난화 방지 조약의 조인 여부에 따라 석유 가격이 인상될 것인지 아닌지를 가르치는 게임이 있다면 좋을 것 같다고 설파한다. 현대의 단순한 위상기하학적 변형만 따르는 게임계 내에서의 자기복제를 비판한다.

그리고 그 곁가지, 게임의 스토리, 허구적 장식에도 시간을 쏟는데, 일견 핑계처럼 되어버리는 게임의 은유를 조심스럽게 파악해 나간다. 사람들은 스토리 때문에 게임을 하지 않으며, 게임의 핵심이 스토리로 인해 변하진 않는다고.훌륭한 소설을 완벽하게 ‘터득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고. 물론 구시대적 시각이다. 영화와 비견되는 연출들로 승부하는 게임들이 많은데 그 연출들의 핵심은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로써의 정체성, 스토리의 중요성은 완전히 놓아버리지 않는데, 재미는 ‘맥락적’이라고 하는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일 것이다. 그의 말대로 재미는 그저 게임 시스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는 도전과 환희(심미적 감상)의 균형이 정말 완벽할 때 사람들은 게임에 완벽히 몰입하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사람들의 ‘배움’에 대한 보수성을 지적한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강점을 반영하는, 자신이 이미 잘하는 게임을 선택한다고 하며 자기의 약점을 다루는 게임을 찾아내서 연습해야 한다고, 게임으로도 자신을 교육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내 게임 패턴은 너무나 보수적이어서 이 부분에서 조금 부끄러웠다.

게임이 교육, 배움이라면 거기엔 당연히 속임수가 개입하게 된다. 시험에 늘 부정 행위가 따르는 것처럼. 게임은 게이머들이 긍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패턴을 형성해야 하며 예측 가능함 내에서 예측 불가능함을 추구해야 한다. 그로 인해 즐거움과 학습을 함께 포괄해야 할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스토리를 저평가하며 완전히 숙달된 게임을 반복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는데, 게임을 영화와 흡사한 매체로 생각하고 싶은 나로써는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스토리는 너무나 중요하고, 숙달된 게임을 반복하는 것은 영화의 새로운 해석을 위해 다시 보는 것처럼 인식되어야 할 것 같은데. 영화에 조금 더 자율성을 준 매체, 2차원이 영화라면 3차원이 게임이다 라고 설명한다면 과장일까.

더군다나 게임의 재생산, 게임의 개조는 이제 컨텐츠가 될 정도로 활성화된 시장이다. 되려 게임 회사에서 모드 기능을 풀어줄 정도로, 이제는 플랫폼화가 진행될 정도로. 이것 역시 사실은 게임의 반복 플레이의 연장선일 것이다.

게임을 둘러싼 비평과 학계의 등장에 중점을 두고 긍정적으로 판단하는 저자의 생각은 들어맞아, 이제는 꽤 큰 시장을 형성했다. 사람들은 메타 크리틱 점수를 따지며 게임을 플레이하며 고티를 몇개 획득했는지를 기준으로 두고 판단한다. 영화 별점을 보고 영화를 고르는 것처럼.

그의 ‘인상주의 게임’ = 지뢰찾기 라는 문답은 꽤 흥미로웠다. 주체적이지 않은 것들로 주체를 표현하는 작품은 꽤 많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유명한 ‘로그’가 아스키 코드로 그래픽을 표현했고, 지금의 로그라이크들이 점차 현실적인 그래픽으로 변해가는 것을 이어 생각하면 ‘인상주의’에서 ‘사실주의’로 나아가는 것과 흡사하게 느껴진다. 로그의 ‘하드’한 플레이가 로그라이크를 거쳐 로그라이트 등 장르로 분화되며 좀 더 가볍게 변화하는 것은 점차 추상화되어 완전히 도형으로 남은 몬드리안의 그것이 떠오른다.

저자는 윤리를 크게 중요하게 보았고, 챕터마저 따로 떼어냈다. 당연하다. 게임이 늘 지탄받는 지점이 바로 그 지점이니. 체감상으론 그때나 지금이나 시각이 그리 긍정적으로 바뀐 것 같진 않다. 심화되지 않았다면 다행일 것이다.

그는 문제가 되는 경우는 게임 플레이는 멋지지만 내용은 저속한 게임이라고 정리한다. 당연히 GTA 같은 게임을 말하는 것이다.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 게 아니라 이전에 ‘팩맨’과 ‘유령을 피하라는 게 현실과 맞닿아있진 않다’는 점에서 들었듯 게임의 장식 요소는 게임의 큰 요소는 아니라고 정리한다. 물론 영향을 끼치지만, 그것은 게임의 중심 요소가 아니라는 의미다.

그리고 역효과가 나지 않도록 부드럽게 게임의 표현 범위를 넓혀가자고 한다. 저속하지 않게. <로리타>와 <호밀밭의 파수꾼="">과 <지옥의 묵시록="">처럼. 섹스와 폭력을 배제해서 볼만한 영화, 책, TV 프로그램을 씨말리지 말고 천천히 나아가자고 말한다.

그리고 그 소품들을 잘 이어붙여 시렁을 만들고 나머지는 게이머들에게 맡기자고 말한다.

우리 아이들은 게임을 하면서 나를 거북하게 만드는 말이나 행동을 한다. 그러나 달걀을 깨지 않고 오믈렛을 만들 수는 없다.

고 말한다. 동의하는 바이다.

좀 정리하는 느낌의 독후감이 되었고 그래서 길어졌네. 많이 빠뜨리고 적었지만, 얼추 이 정도로 정리해두면 마음은 편안할 듯하다. 내 느낌은 정말 양념이 되었구나.

아무튼, 조금 오래된 감이 있지만 여전히 생각의 지평을 넓혀주었다.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