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 음지에서부터 서서히 잠식해와 날 좀먹는 이 기분. 피로감. 두통. 이게 통증이라는 걸 인지했을 땐 이미 완전히 내 생활에 숨어들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무서운 건, 그랬기 때문에 이 느낌을 너무 당연하게 여겼고, 늘 날 세상의 기준으로 생각하는 생리 현상과 극한으로 맞닿아 있는 오만함과 맞물려 전혀 개선할 생각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게 벌써 몇 년째인지.

내가 피로감에 쩔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연애를 하면서다. 연애는 반죽을 살살 눌러서 펼치고 치대는 것처럼, 서서히 찰기를 가지고 나의 중심을 펼쳐주었다. 세상의 중심은 어느새 내가 아닌 우리가 되어 있었다.

반죽이 서서히 서로 융화되듯 나 역시 예현이와의 융화를 위해 나와의 차이점을 하나 하나 되짚고 반성해 나갔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피로감이다. 아침에 유난히 강한 여자친구를 보면서 나의 이 괴로운 아침이 ‘뭔가 잘못된 것’임을 알아채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잘못된 것은 뭐, 뻔하지. 잠이지 않겠는가. ‘코를 골지 않는다’는 증언에 조금 안도했지만, 계속해서 꿈틀거린다는 증언에 심히 불안해졌다. 내 수면의 질은 이대로 괜찮은걸까?

그래서 선택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제목부터가 나의 위협감을 저격하고 있다. ‘잠이 잘못됐습니다.’

리디북스에서 구매했는데, 리디북스에 달린 댓글의 평가가 썩 좋진 않다. 아니 아주 안 좋다. 읽으면서 그들의 심정을 어느 정도 헤아릴 수는 있었는 것이, 사실 책의 제목이 주는 느낌과 내용이 상이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나도 책 제목만 보고 아주 당연히 ‘수면 습관에 대한 충고’ 정도의 가벼운 책으로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었다. 하지만 책은 그런 기대감을 자연스럽게 무너뜨리고 대학 논문급의 묵직함을 나에게 들이밀었다. 표지에 적혀 있는 ‘예일대 수면의학 박사가 전하는 꿀잠 꿀팁’이라는 문장에서 방점을 찍어야 하는 부분은 ‘꿀잠 꿀팁’이 아니라 ‘예일대 수면의학 박사’였던 것이다.

아무튼 예상과는 다른 책의 내용에 조금 당황했지만, 책은 유익했다. 내 수면의 질에 조금은 영향을 미쳤으니. 일단 내 수면을 조금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고, 수면의 향상을 위해 비강확장기까지 사서 사용하기에 이르렀으니.

책은 수면 장애를 확실히 정의하며 천천히 수면 장애의 원인들을 조망한다. 잠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수면 장애에 의한 주변인들의 고통도 짚으면서. 잠이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개인에 강력하게 밀착되어있는 주변인들도 충분히 그 개인적인 문제에 영향을 받겠구나, 새로운 시선을 가질 수 있었다. 사실 당연한 것인데 생각해 보지 않으면 깨닫지 못하는 지점이다. 사람은 자신이 겪는 일들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니까.

나이별로 수면량이 다른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안심시키기도 한다. 6시간 이상은 자야지, 하고 늘 내가 철칙으로 지키던 수면량에 조금 의심을 품게 되었다.

수면에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것이 호르몬 변화이다 보니 수면에서 불이익을 받는 것도 여성이 크다. 월경, 임신, 폐경기. 신체의 불이익을 태어나면서부터 감내해야 하는 이들의 고통을 내가 가늠하기란 쉽지 않다. 그저 그렇게 문장을 통해서만 조금 이해할 시간을 가져볼 뿐. 이전에 항거를 보며 일제강점기의 고통을 좀 더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었듯이 이런 평범한 여성의 일상의 고통을 텍스트화, 영화화 한 것이 있다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수면 장애의 종류는 너무나 많았다. 불면증, 하지 불안 증후군, 수면 무호흡증, 기면증 및 정신 질환 등. 그리고 그에 영향을 미치는 약물도 너무나 많다. 카페인부터 수면제까지. 이 다양한 문제들을 모두 하나 하나 섬세하게 짚어가며 지극히 교수의 시각으로 진지하게 그 인과관계를 설명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조금 지루하다. 너무 전문적이다. 그래도 그 학술적임이 언젠가 내가 혹시라도 겪게 될 상황이 되면 조금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막연히 생각해본다. 그렇지만 그 학술적인 지식이라는 것도 절대적인 게 아니라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니. 정말 나의 일이 된다면 새롭게 정의된 지식들과 혼용해야 할 것이다.

4부의 수면 장애 해결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 불면증에 관한 이야기이다. 불면증을 실제로 겪는 상황이 되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가늠해본다. 나는 눕자마자 자는 스타일이라서 조금 공감하기 힘들지만, 가끔 찾아오는 잠이 오지 않는 밤의 그 고통을 알기에 그래도 그나마 여성의 고통에 비하면 쉽게 이해가 가능했다.

결국 나와 밀접한 수면 장애는 수면 무호흡증, 하지 불안증 정도. 사실 하지 불안증도 내 증세랑 조금 차이가 있었는데, 예현이가 ‘주기성 사지 운동증’에 더 가깝지 않느냐고 정보를 물어다 왔다. 과연 그랬다. 아무튼 그 모든 증세의 원인으로는 대충이나마 가늠해 보건데 호흡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 결론에 다다랐고, 비강확대기를 구매했다. 아직 2일밖에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은 개선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그 학술적임 때문에 책은 굉장히 길었다. EBOOK의 장점이자 단점은 책의 두께를 가늠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난 아직 단지 몇 자의 숫자로는 이 책의 길이를 가늠하기가 힘들다.

그래도 나의 본질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즐거웠고, 재밌었고, 또한 유익했다. 응,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