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탐방서점
살랑살랑 봄바람이 언듯 찬 바람을 비집고 나오려고 하는, 봄과 겨울의 고비를 넘고 있는 시기다. 약간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언덕이다 보니 넘는 것이 그리 힘겹진 않다. 마음을 온전히 언덕을 넘는데 사용하지 않아도 괜찮을 정도의 여유는 남아 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할 만한 것은 책을 쥐는 것 뿐이겠지.
이번에 읽은 책도 서점에 관한 책이다. 이전에 게이분샤 관련 책, ‘거리를 바꾸는 작은 가게’와 어떻게 보면 꽤 강한 결착을 가지고 있다. 책 뒤의 특별 강연으로 호리베 아츠시님의 강연도 있었고. 아무래도 전통적인 서점상에서 벗어나서 크게 성공한 모델로 효과적으로 동작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서점에 대해 느끼는 그 묘한 향수와 요새 독립 서점의 트랜디함 사이에는 미묘한 간극이 있는데, 이 책이 잘 설명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자기만의 서점, 좀 더 넓게는 소규모 창업에 대해 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소소한 기대감도 조금 섞었다.
뭐, 역시나 실용 서적과 에세이 그 사이를 배회하는 느낌의 책이다. 인터뷰니까 여러 주제가 혼재하기 마련이다.
책은 여러 독립 서점을 다룬다. 인터뷰 시점이 16년이다. 벌써 햇수로 치면 3년 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보수적인 시장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해본다.
책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역시나 ‘책방 만일’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는 점일 것이다. 어느 순간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버린 망원동 독립 서점. 간간히 들렀던 장소들이 하나 둘 사라지면, 그 기억이 정말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인지 그 사라진 장소에 조금 집착하게 되는 듯하다. 향수를 먹고 자라는 기억이다. 그리다 카페도 그렇고.. 아무튼, 사장님과 직접적으로 어떤 공감대를 형성한 것은 아니었고 단지 공간의 기억일 뿐이지만 이렇게까지 현재에 영향을 미친다.
이미 사라진 서점이 꽤 많다. 만일을 포함해서 일단멈춤도 사라졌고, 뒷부분, ‘서점 수업’에서 땡스북스에서 나와 독립서점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지혜님의 서점도 시즌 1을 마친다는 말로 일단 접은 모양이다. 그만큼 작은 서점의 수익은 불안정한 것이리라. 파이가 작은 것은 독립 서점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독립 서점을 차리려고 하는 사람들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 책의 인터뷰이와 청중들 모두가 그에 대해 유언이든 무언이든 긍정을 표한다. 뭐,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마음에 적극 동조할 수 있다. 일정 이상의 물질적 가치만 갖춰진다면 나만의 공간을 꾸리고 그 공간을 세상에 내보내고 싶다. 마치 SNS를 바깥으로 꺼내놓은 듯한 그런 장소. 나의 욕망을 한가득 담은, 상업적이지만 비상업적임이 공존하는 그런 공간.
독립 서점은 각자의 생각과 가치관이 다르고 그것이 서재에 드러난다는 점이 재밌다. 당장 내가 가본 몇몇 서점들도 모두 그 책의 종류나 분위기가 모두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유어 마인드의 이로님이 말하는 ‘캐릭터가 강하게 강조될 수 있는 지역이라면 접근성은 부차적이라는 점입니다.’라는 말에 긍정한다. 나부터 그 서점을 들르기 위해 일부러 타지에서 찾아갈 용의가 있기 때문이다.
각 서점들의 특색을 그대로 읊는 건 그다지 의미가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조금 짚어 보자면, 유어 마인드는 독립 서적 + 생산, 고요서사는 문학, 만일은 인문 사회, B-PLATFORM은 서적 예술(서적 예술이라는 장르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일단 멈춤은 여행, 한강 문고의 서점의 전통적 가치, 땡스북스는 서적 배치 + 공간, 햇빛서점의 LGBTQ 컨셉. 단지 하나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가치를 섞어서 새로운 가치를 생산해 낸다는 점에서 인디 게임신과 비슷한 양상이다.
책의 재미있었던 부분은 마지막의 서점 수업과 부록 부분으로, 실질적으로 독립 서점을 차릴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어떤 부분을 유의해야 하는가, 그리고 어떤 차별성을 가지는게 좋은가에 대한 실무자들의 생각을 보여주고, 또한 실무 용어들까지 부록에 실었다. 실무 용어같은 경우는 사실상 거의 변할 일이 없을테니(한동안 말이다.) 정말 유용하다. 만일, 정말 만일 내가 서점을 차리게 된다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 읽고 나니 나도 저런 도전을 하고 싶다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드는 것이다. 뭐, 어떻게 보면 지금 그리고 있는 미래와 굉장히 밀접하니까..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하다 보면, 그리고 접하고 또 접하다 보면 미래는 더 손에 잡힐 듯하다. 늘 꿈을 꾸는 듯 몽롱하게 살아가고 있다. 어릴 때건 지금이건.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