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읽은 이번의 단편집, 권여선님의 단편집은 안녕 주정뱅이. 천천히 읽었지만, 확실히 전의 처녀치마보다는 이해하기 수월하고, 또한 좀 덜 작위적인 느낌이었다. 메시지를 숨겨두는 것과 오픈하는 것 사이의 줄타기를 굉장히 잘했달까. 아무튼 처녀치마와 이 책은 결이 달라서 다른 사람이 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이 책도 재미있었다.

이번 책은 제목처럼 술꾼, 술을 마시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술이라는 게 보통은 우울하고 씁쓸하고 그런 어두운 면이 확 하고 느껴지게 마련인데, 실제로 내용들도 다들 어느 정도 그런 측면이 있다. 단편 소설이란 사실 죽음이 없는 것을 찾기가 힘든데, 술이라는 주제와 어울리는 이유가 그런 이유 아닐까.

봄밤, 삼인행, 이모, 카메라, 역광, 실내화 한켤레, 층 으로 이어지는 단편 소설들은, 어떤 내용은 씁쓸하고 어떤 내용은 따뜻하고 어떤 내용은 짜증이 나고 어떤 내용은 소름이 돋았다.

단편 소설들이기 때문에 지금 기억에 남는 글 하나에 대해서만 써볼까 한다. 그건, 음, 그건, 꽤 고민이 되는 문제지만, 독후감을 쓰기 좋은 이야기는 ‘이모’가 아닐까.

이모는 주인공의 남편이 결혼할 때 알리지 않은 이모를 병원에서 처음 만나고, 집으로 정기적으로 찾아가며 그녀의 인생을 조망하게 되는 내용이다. 타자가 실질적 주인공의 삶을 훑고 이해한다는 건 꽤 흔한 이야기이지만, 그래서 효과적이다. 그리고 이모, 윤경호가 원하던 삶, 소설가의 삶을 사는 주인공은 이모에게는 어떤 이상향이었을 것이다. 그녀를 만나며 가슴 떨려하는 장면은 감정 몰입이 너무 잘 되서 나까지 떨리고, 섭섭해질 정도였다.

아무튼 전혀 자신을 위해 살지 못하다가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살아보게 되는 몇 년, 그 간의 이야기가 사실은 전혀 완전히 오롯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마음이 아파온다. 점점 마음이 아파오다가 마지막, 그녀가 남긴 유산 분배에 대한 이야기까지 도달하면, 시어머니의 대처에 휴, 안심하며 책을 덮게 된다.

이런 소시민의 이야기를 감성과 가득 섞어 풀어낼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고, 참, 글을 써보고 있자니 여러가지 디테일, 각 내용을 어떻게 분배하고 어떻게 배치하는가에 감탄하게 된다. 점점 글을 보는 것에 대한 시야가 넓어지는걸까 그랬으면 좋겠네. 횡설수설한데, 피곤한데 독후감을 쓰는 건 역시 좀 잘못이었을까.

아무튼 정리도 했겠다, 뿌듯하고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