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TV를 거의 보지 않는 탓에 김영하 작가와는 연이 도무지 없었다. 그 연이라는 것이 TV와 인터넷, 유선과 무선을 아우르는 그 공간에서 언제든 대면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사실 한번쯤은 연을 엮어볼 만도 한데, 영 귀찮다. 새로운 것에 거부감을 가지지 말자, 다짐하며 고치려고 하지만 내 안 어느 구석탱이에는 여전히 새로운 것에 눈을 흘기는 무언가가 들어차 있다.

아무튼 그러니, 그 전기 신호로 연을 엮을 수 없다면 다른 방식을 모색해 봐야 했는데, 가장 편리하게 그 인연을 만들어볼 수 있는 계기가 바로 책이었다. 다행히 김영하 작가님은 말 그대로 작가님이시고, 책이라면 내 방 바닥을 가득 메울수도 있을 정도의 양을 집필하셨으니. 그리고 그 분으로써도 사실 본인 그 자체보다는 작품으로써 은유적인 대화를 나누는 게 더 즐거울 것이라 생각했다. 분명 즐거울 거야. 그렇게 생각했다.

근데 음, 이 책의 글들에서 미묘한 마초적 향취 때문일까, 그렇게 확연히 즐겁고 아름다운 대화만은 아니었다는 것이 지금의 내 생각이다.

그래도 그의 환상적 요소가 내 상상력을 자극시켰고, 그 지점이 나의 취향의 흐름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 꽤 된 작품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읽는다면 역시 나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어제 본 기생충에 대한 생각과 엮어 이야기하자면 내 생각은 이렇다. 약자의 고통을 강자의 입장에서 ‘배려’랍시고 ‘타자화’하는 그 과정은, 그 목적을 배제하고서라도 아무튼 약자에게 어떤 부조리함을 감내시키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비록 내가 그 완벽한 약자의 마음을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그 아픔에 대한 공감은 필연이어야 할텐데. 뭐, 물론 시대의 흐름과 그 시대상을 반영해야 할 것이지만. 누구나 시대를 앞서나간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고, 나의 지성 역시 시대가 완성시킨 것이니.

아무튼 단편 하나 하나는 재미있었다. 특히 환상적 요소가 가미된 흡혈귀 같은 작품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게다가 본인을 끌어들여서 현실감을 가미한다는 발상 역시 신선하고. 사실 신선한 발상은 아닐지도 모르나, 초짜배기 나에겐 굉장히 신선했다.

사진관 살인사건 같은 경우에는 과연 어떻게 끝날 것인가, 손에 땀을 쥐고 보게 되는 그 인과관계들이 즐거웠고, 피뢰침 같은 경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조망하는 게 특이한 경험이었다. 고압선도 환상적 요소가 있었는데, 남성 판타지를 너무나 강렬하게 비판하고 있어서 나도 고개를 숙여야 했다. 누구라도 고개를 숙였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원래 첫인상으로 판단하면 안 되는 법이다. 다음 책은 뭘 읽어야 할까, 고민이 되는 시점.

하지만 그 이전에 사둔 책들부터 다 읽어야 하겠지.. 흑흑.

다음 책은 권여선 작가님의 레몬. 이미 읽고 있지만.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