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머신 플랫폼 크라우드
이번 독서 모임에서의 책이었다. 일이 있어서 참가하지 못했다는 점이 안타깝게 느껴질 정도로 괜찮은 책이었는데. 읽기만 했는데도 어느 정도의 인사이트를 확보할 수 있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토론을 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안타까움. 그 감정이 더 짙어지기 전에 얼른 독후감을 써내려가려 한다.
제목 그대로의 책이다. 머신, 플랫폼, 크라우드. 이 세 가지를 조망하며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울러 기술과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떤 학문이든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 학문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나아간다. 이 책에서 시스템 1, 2로 표현되는(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나오는 표현이다.) 직관과 논리는 적어도 공학적인 것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이다. 후반부에 언급되는 DAO 같은 개념도 사실상 이데올로기에 가까운 것이었고. 과격한 개념이긴 하지만. 그래도 현대에 비추어 파급적으로 느껴질수록 혁명에 가깝다는 것은 반론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읽기 전에는 책의 주제가 가볍게 느껴진 것이 사실이다. 머신, 플랫폼, 크라우드. 전부 다 이름만 들어도 대충 어떤 것인지 감이 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거니와 최근의 변화의 물결들에 편승해서 나오는 책인 마냥 느껴졌다. 시류에 따라 한번 내보는 그저 그런 책 같은 흐릿한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제목의 이 평범함과 요새 쏟아져나오는 머신러닝, 블록체인 같은 책들을 직접 보고 난 후 이 책의 제목을 보면 쉽사리 그 쏟아져 흐르는 책들과 이 책을 연관지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머신에 관해서는 뭐, 사실 뻔한 이야기이다. 머신러닝에 대한 이야기. 하지만 머신러닝의 과거부터 현재까지를 훑고 올라오는 형식이 재밌다. 이 책이 전반적으로 그런 식으로 되어 있다.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를 예측해보는 방식. 효율적인 방식이다.
그리고 적당히 전문적인 것도 놀랍다. 무어의 법칙, 같은 건 컴퓨터 서적 외에서는 본 적이 없는데 버젓이 이 책에 실려 있었다. 아는 개념이 나오면 괜히 즐거워지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걸까, 내 특징에 가까운 걸까. 후반의 크라우드에서 리눅스와 오픈 소스, 자유 소프트웨어까지 언급되는 것도 그의 연장선으로 즐거웠다. 이 대세가 된 흐름이 컴퓨터와 너무나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으니 별 수 없긴 할 것이다.
인공지능 부분에서 이런 글이 있다.
초창기에 인공지능 학계는 두 진영으로 분열되었다. 한쪽은 이른바 규칙 기반 또는 ‘상징적’ 인공지능을 추구했다. 다른 한쪽은 통계적 패턴 인식 시스템을 구축했다. 전자는 성인이 외국어를 배우려고 노력하는 방식으로 인공지능에 접근하려고 시도했다. 후자는 아이가 첫 언어를 배우는 것과 흡사한 방식으로 인공지능을 구축하려고 시도했다.
전자는 우리가 프로그래밍을 하듯 모든 규칙을 일일이 수기로 입력하는 것이고, 후자는 말 그대로 머신러닝, 컴퓨터가 자체적으로 학습을 이끌어나가도록 하는 방식이다. 대학교 때, 우리 학과 교수님이 연구실에서 인공지능을 연구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교수님의 대략적인 설명에 의하면 그 방식은 전자였다. 아마 그 때는 그 방식이 대세였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조금 씁쓸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아무튼. 이에 대해 설명하며 폴라니의 역설을 언급하는데, 이 역설이 재미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는 이론이다. 말 그대로 어떻게 걷는지, 젓가락질은 어떻게 하는지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철저히 입으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한 것만 같다. 그렇기에 첫 번째 방식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후자는 완벽한가, 하면 그렇지 않았다. 마치 진화를 빨리감기 한 것 처럼 이루어지는 머신러닝은, 인간의 생각이 진화해온 방식과 절차를 그대로 따라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머신러닝을 통한 AI는 인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욕구에는 쉽게 닿지 못한다.
플랫폼, 은 이전부터, 그러니까 플랫폼 레볼루션 같은 책들과 비슷한 이야기다. 그래도 O2O 플랫폼 같은 것은 역시 여전히 생각할 여지가 있다. 자원이 무료에 가까운 기존의 플랫폼과 다르게 실제 자원을 플랫폼과 엮으면 좀 더 복잡하게 연계되어 간다는 내용이다. 이 모든 것을 수익과 연관지어야 하는 기업으로서는 불행한 일이다.
크라우드 같은 경우, 오픈 소스를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 나의 짧은 생각을 일깨워주었다. 일반적인 군중에 대한 이미지는 ‘비전문적인’이라는 색이 짙었는데. 그렇지만 대다수가 전문가인 군중도 군중인 것이다. 그리고 비트코인, 블록체인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사실상 블록체인은 군중과는 좀 별개의 이야기 같지만. 전자 화폐의 개념, 그러니까 중앙집권식으로 화폐의 검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이어져서 서로를 검증해주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블록체인이다. 그리고 DAO에 대한 이야기. 중앙집권식의 정부에 대한 대체제로 여기는 사상이다. 이렇게까지 생각을 전개해보지 못한 나에 대한 자괴감이 좀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여기서 의문. 그런 식으로 나아가는 것, 그러니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견제한다는 점을 상위로 두자면 오픈 소스와는 결이 많이 달라진다. 책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오픈 소스는 ‘괴짜 리더십’이라는 것으로 대변할 수 있다. 즉, 그 소스에 강한 책임감을 느끼는 어떤 중심적인 인물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이더리움도 실제로는 그랬었지 않은가. 비트코인의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도 그런 이유로 사라진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꽤 이야기가 길어지는데, 생각할 여지가 많은 책은 역시 즐겁다. 많은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던 것들이 거미줄처럼 줄을 잇고 이어서 내 뉴런까지 이어진다.
재미있었다. 급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