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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를 샀다. 벽돌 색깔 의자로, 안 그래도 좁은 내 방을 더욱 좁게 꾸며주는 그런 아이다. 뭐, 좁은 방이 분명 불편하긴 하지만 가끔 유용하게 생각될 때도 있다. 의자에 앉아서 CD를 교체하거나 음악 소리를 줄이고 높이거나 바로 옆의 침대 위에 잠깐 내 짐들을 올려두거나 앉은채로 옷장을 열거나 할 때는 특히 그렇다. 그리고 그 묘하게 완벽하게 사용하고 있는 공간 공간들의 면면을 보고 있다면 만족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고. 아무튼, 공간이 좁으니까 의자 선택지도 굉장히 좁아졌더랬다. 폈다 접었다 할 수 있는 무중력 의자를 잠깐 고민했다가 그 잠깐 펴고 접는 것도 귀찮아질 것이 뻔하다, 32년간 그런 것에 속아왔던 것도 충분하다, 이제 그만 속자, 하는 생각에 마음을 접었다. 그 무형의 마음을 접었다 펴는 것도 힘든데 그 물질적인 것, 그 현실 공간을 차지하는 것을 접었다 폈다 할리 만무하지.

아무튼 결국 사게 된 건 낮고 평범한, 카페에서나 볼 것 같은 무난한 의자다. 10만원이 넘는 가격을 형성하고 있는 의자인데 좀 인기가 없었는지 요 최근 할인을 하고 있었다. 그 미묘한 지점, 좋은 물건이지만 인기가 없다는 지점에 지극히 공감해서 구매에까지 바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건 아무래도 좀 자의식 과잉. 그런 생각이긴 하지만, 아무튼 사서 이번주말 잘 사용하고 있으니까 조금 과잉이어도 괜찮을까, 또 이렇게 과잉하는 생각을 해본다.

의자를 사게 된 계기는 북카페에 있다. 뭐 뻔한 계기지만 텍스트로는 그 빛이 번쩍하는 기분을 옮길 수가 없다는 점이 너무 슬프다. 내 글솜씨도 문제겠지만, 그 많은 현인들이 자신의 깨달음을 쉽사리 남기지 못한 문제와 비슷한 문제다. 깨달음이라는 건 계기가 되어줄 순 있어도 그걸 그대로 USB에 옮겨 담듯이 할 수는 없다. 그 북카페의 쇼파에 파묻히듯 안겨서 책을 읽다 보니 깨달았다. 우리 집의 문제점. 내가 이런 자세를 취할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없다. 이것 때문에 내가 책을 등한시 해온 거야. 그렇게 이유를 만들다 보니 강남에서 살 때는 구름의자가 있어서 그나마 퇴근 후 책을 꽤 읽었다는 것까지 떠올릴 수 있었다. 깨달음과 핑계는 참 여러 이유로 비슷한 면모가 있다.

의자를 동생과 영차 영차 들고 들어와서 상자를 까고, 의자를 내 방 구석에 놓고, 그 위에 몸을 얹고 보니 내 방의 구조가 마음에 들지 않아 이리 저리 바꾸었다. 구식 올인원 PC의 높이를 조절하는 작은 수정이었지만, 그 위치에서 잘 살아가고 있던 다른 피해물(?)들에게는 그렇지 않았겠지. 겨우 의자를 하나 들였을 뿐인데 내 방 안의 UX는 굉장히 많이 바뀌었다. 편리해졌냐고 하면, 음. 편리해졌다. 문제를 인식하는 것도 보수적인 심정으로는 힘들군. 내가 ‘바뀌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인데 방의 UX까지 바뀌었으니까.

사람이 바뀌면 환경이 바뀌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 집도 내가 아닌 다른 세입자가 들어오면 완벽히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테니까. 그럼 환경과 나, 더 많이 바뀐 건 뭘까. 고민해 보다가 이 고민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이어 하며,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군, 생각했다.

어떻게 생각하냐고 의자에게 물어보듯 시선을 던져 봤지만, 의자는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