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 Paws Essay] 환원주의의 오류
철학에는 환원주의라는 개념이 있다. 어떤 큰 개념을 작은 개념의 집합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견해라고 하는데, 뭐든 적확한 예시가 없으면 정확하게 그 뜻을 헤아리기 힘들다. 나는 머리를 긁으면서 눈살을 찌푸리면서 인터넷을 좀 더 뒤져본다. 가장 만만하고 가볍게 읽어볼만한 웹페이지라면 단연 나무위키겠지. 하는 가벼운 생각으로 나무위키를 찬찬히 읽어본다. 머리가 딱딱한 나는 스크롤도 무거운 추처럼 다룬다.
이와 같은 환원주의의 특성 때문에 영국의 천체물리학자이자 수리물리학자이며 동시에 대중적인 유신론적 진화론자인 J.폴킹혼 경은 자신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다음 문장에 대해 수긍할 수 있다면 자신이 환원주의자라고 생각해도 큰 문제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결국 인간이란 단지 무수히 많은 쿼크와 글루온, 전자 등이 모여 있는 집합체일 뿐이다."
이 글에서 잠깐 스크롤을 멈춘다. 기시감이 언뜻 스쳤다. 마음속 깊이 익숙했다. 왠지 일상적으로 개념을 다루고 있다는 이 미묘하게 불길한 느낌. 대체 내가 언제 어디에서부터 환원주의자가 된 것일까. 왜 이 문장을 무리없이 긍정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도 잠시. 나는 웃음을 흘린다. 뭐야, 지극히 객체지향적인 내용이었잖아.
프로그래밍의 패러다임들이 독립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성을 쌓았다고 세상 순진하게 믿어오진 않았다만, 그래도 이렇게 전혀 다른 주제 아래서 익숙한 개념을 만난다는 건 마치 여행지에 놀러 갔다가 아는 얼굴을 만난 것과 비슷했다. 반가워서 악수라도 나누고 싶은데, 하는 생각 덕분에 스크롤이 살짝 가벼워지는 기분이다. 마우스 휠에 윤기가 돈다.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스크롤을 굴린다. 그리고 또 다시 스크롤을 멈춘다.
환원주의의 현실적 문제라면, 섣부른 미시적 관점을 너무 간단하게 거시적 세계에 대입해서 어설픈 체계를 구성했을 때 나타난다.
환원주의에 대한 반론 중 한 대목이었다. 이 글은 너무나 일상적인 나의 실수를 명확하게 짚고 있다. 직관에 의지한 코드 구조 빌딩으로 코드에 초를 치는 내 모습이 쉽사리 오버랩된다. 손가락에 가시라도 박힌 것처럼 짜릿하다. 섣부른 미시적 관점이라고? 아니야, 섣부른 건 아니지. 되뇌면서 내 실수들을 곱씹어보지만, ‘섣부르다’라는 말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는 그런 것들이었다. ‘안일하다’라는 말로 치환할 수도 있겠다.
아마 환원주의의 오류를 범하는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논거를 통할 것이다. 뭐야, 이건 a랑 b를 대충 합하면 되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대충 되겠거니 조잡하게 합쳐보고는 맞아 맞아, 이건 확실하다, 이건 되는 거야.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충 조합한 후 대충 구석으로 밀쳐둔다. 새로운 무언가를 깨닫고 완성했다는 만족감을 얻는다. 확실한 테스트의 기반이 없다면 그건 완성도 무엇도 아니라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직관에만 의지한 행복회로가 윙, 윙, 돌아간다.
그리고 논파당하겠지. 그 논파를 이끌어낸 사람이 나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타인이 논리적 허점을 발견하고 나에게 들이민다면 나는 내 허술함이 부끄러워 아무리 좁은 구멍이라도 파고들 자신이 생길 정도로 부끄러워질 것이다.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려서, 눈을 질끈 감아 버린다.
그 모든 것을 환원주의로 설명할 수 있다는 ‘환원주의의 오류’는 객체지향적으로만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프로그래머의 믿음처럼 허망한 것이겠지. 결국 패러다임, 개념도 복합적으로 다루어야 하겠구나, 생각해본다.
그래, 역시 답은 함수형 프로그래밍이야…라고 이렇게 쉽게 결론내면 안된다고.
오늘도 그런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본다. 글을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