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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로맨스 영화 중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시리즈를 꼽을 것이다. 로맨스가 차츰 차츰 현실에 투영되며 완벽히 현실적으로 끝맺음을 맺은 이 시리즈의 시작과 결말 부분이 정말 마음에 든다. 영화 각각도 시간이 흐르는 것을 시각적으로 정말 잘 표현해서 마치 내가 산책을 하고 대화를 나누고 농담을 거는 것 같은 것들도 좋다. 감독이 '시간'과 '인물'을 다루는 방식은 정말 현실적이라서 당장이라도 길 밖 어딘가로 나가면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서사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과 그 내면에 완벽히 집중해서 단계 단계 쌓아나가서 현실성을 만들어 올리고, 결국 그 현실적인 것들이 모여서 우연처럼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느낌. 그의 작품들은 다 그런 느낌들을 가지고 있다. 보이 후드도 그렇고, 그의 초기작 슬래커도 그렇고. 극단적으로 시간과 인물에 집중하고 있다. 슬래커 방식의 영화라는 걸 쌓아올렸고 나름의 매니아층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굉장히 성공적으로 브랜드 메이킹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감독의 방식을 게임과 블랜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게임으로 눈을 돌려 본다. 캐릭터 중심의 게임은 넘쳐날 정도로 많지만, 정말 천편일률적인 모습들의 전형이다. 일본 캐릭터 산업에 영향을 받아 만든 상업적인 게임들이 대부분. 물론 소비자의 니즈도 생각해야겠지만...

아무튼 다시 링클레이터 감독의 방식과 게임을 블랜딩한다 치면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까. 현실적으로 영화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갈 수는 없다. 영화의 카메라 기법, 미장센 등을 내가 추구하는 2D 방식의 게임으로는 담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3D 게임이라면 당연히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아무튼 그건 전제에서 제외해야겠지. 그렇다면 2D 게임에 섞을 수 있는 건 어떤 게 있을까?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려면, 캐릭터의 미묘한 표정과 감정선을 표현하려면 어떤 방식을 따라야 할까? 큰 서사를 크게 따지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인물들을 배경 위로 던져두려면 어떤 식으로 씬을 구성해야 할까? 그리고 이 심심한 내용의 게임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면(즉, 상호작용의 이점을 살리려면) 어떤 걸 더 추가하면 좋을까.

꽤 생각할 점이 많잖아, 이거.

요 최근 이 <비포> 시리즈 시나리오의 원문을 어설프게 읽어보면서 든 생각과 고민을 대충 대충 옮겨봤다. 결국 명확한 것은 하나도 없다. 실속이 없는 글이구나, 정말.. 하지만 이런 대충의 러프한 생각들이 모이고 모여서 어떤 아이디어의 가닥이 잡히진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해 본다.

맨날 이렇게 기대만 하고 있는 거 아냐,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