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 Paws Essay] 산책에 대해서
나는 산책을 꽤 신봉하는 편이다. 아니, 편이었다고 하는 것이 어울리려나. 대학교부터 사회 초년생이었을 때까지 나는 산책이라는 교리를 믿었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자주 산책을 즐겼다. 노을이 하늘과 강 속으로 샤뱃처럼 녹아드는 건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인상적이다. 노을은 매일 녹았다 굳었다 하는데, 그걸 인지하려면 굳이 내 눈과 발을 움직이는 수고로움을 거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게 재밌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고, 그런 감정들이 내 산책의 발목을 붙잡고 질질 끌린다. 내 산책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재미라고 하긴 너무 무겁고, 그렇다고 슬픔이라고 하긴 또 너무 처연한 것이었다. 뭐 굳이 따지고 들어가자면, 그거 그냥 ‘뭐라도 했다’는 감정을 즐기기 위한 한 가지 방편이었기도 하다.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인터넷이라던가 뭐라던가 뒤적거리며 시간을 떼우는 것보다는 확실히 뭔가 생산적이라는 느낌이 팍팍 드니까. 그리고 삘 받으면 책이라도 한권 들고 가서 몇장 넘기기까지 했으니까, 이야 이거 뭐야. 나 너무 생산적인데? 하는 자위적인 상황을 쉽게 연출할 수 있었다. 그게 작위적이든 어떻든 그냥 우울함의 바다에 푹 잠겨서 노곤 노곤하게 눈을 반쯤 감은 상태로 남아있는 것보다는 어쨌든 좋은 일이었고, 그래서 난 꽤 자주 한강을 향해 신발끈을 묶었다. 논현역 근처에 살고 있어서 걸어서 가기 나쁘지 않았다는 점도 한 몫을 단단히 하기도 했고.
산책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고 각을 잡고 있자니 좀 더 옛날 생각이 또 아른거린다. 내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 이혁이와 함께 살 때의 일이다. 그 좁은 원룸에서 함께 살을 부비며 사는 건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서로에 대해 굉장히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생각이었다. 친구에 대해 알고 있는 점은 너무나 확연히 알고 있었지만, 모르고 있었던 점은 정말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를 정도로 몰랐던 것이다. 수학의 정석, 그거 내가 꽤 잘 풀 수 있지, 하는 생각으로 펼쳤는데 ‘확률과 통계’ 버전이었던 거나 마찬가지다. 그 시절은 그런 고난의 시간이었지만, 친구와 함께 저녁 산책을 나가서 편의점에서 샌드위치를 나눠먹으며 기타를 퉁기고 밤바람을 맞던 기억만은 너무나 선명하게 강렬하게 남아있다. 그 고즈넉함.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들, 밤 조깅(야깅이라면서?)을 하는 스포티한 사람들, 우리처럼 가볍게 뭔가를 먹으면서 벤치에 앉아서 노닥거리는 사람들. 그런 풍경들이 사진도 아니고 동영상도 아닌 그 무언가처럼 정적인 듯 동적인 듯 내 속에 남아있다. 나도 그 사람들의 움짤같은 기억 속에 파편처럼 나뒹굴고 있으려나.
단어만 들어도 하품이 나올 것 같은 이 행동은 이전에 메이크 타임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과 꽤 궤를 함께 하는 면이 있다. 단어만 듣고서는 그 행동의 모든 뉘앙스를 감히 깨달을 수가 없다고나 할까. 그 속에 숨겨진 사색적인 의미를 곱씹기 위해서는 직접 해보지 않으면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그냥 걷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한때 신봉했던 나조차도 그냥 멍하니 의자에 앉아서는 다시 떠올릴 방법이 없다. 마치 램에 올려놓은 데이터처럼, 분명히 느꼈고 기억했던 감정과 생각들인데 집에 돌아가 의자에 앉자마자 없었던 것처럼 사르르 증발해 버린다. 표면적이고 관념적인 것들만 남아서 동동 떠오른다.
움직이는 게 뇌를 활성화시킨다고 한다. 운동을 장려하는 이유도 뇌건강을 위해서라고 하는데, 한때 산책 신봉자로써 격하게 공감한다. 그래, 그래서 대학교 시험 기간때만 되면 학교 근처, 을숙도로 신나게 산책 나가서 하루종일 걸어다니고 쓸쓸한 밤공기, 강과 바다 사이를 맴도는, 도착지를 알 수 없는 바람을 맞으면서 처량한 기분이 되어 돌아오곤 했었던 거야. 과연 그게 시험 공부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느냐 하면 그건 잘 모르겠다만.
오늘은 집에서 열심히 코딩하고 글 써야지, 마음 먹고는 침대에 누워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것에 환멸을 느껴서 다시금 산책 신봉자가 되어볼까 싶은 마음이 들어서 산책에 대해 몇자 적어봤다. 뭔가를 하려면 집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걸까. 뭔가를 하기 위해 꾸민 내 방에서 나를 몰아내야 한다는 점이 슬프지만.
아까워하지 말고 밖으로, 밖으로 산책을 나가자. 헤드폰을 끼자, 음악을 틀자, 무릎과 발목을 리드미컬하게 움직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