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솔 게임을 처음 만난 것은 아빠가 사온 알라딘 보이를 통해서였다. 어릴 때는 지금의 이 디지털이 넘치는 세상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기기를 접하기가 힘들었다. 콘솔 게임기 역시 부르주아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그 대단한 상징물은 내 마음 속의 자부심이 되었었다. 자부심이라면 무릇 자주 꺼내보고 만져보고 싶을만도 한데, 그 왕관처럼 귀중한 자부심은 ‘큰 힘에는 큰 책임감이 따른다’는 말처럼 쉽게 어루만질 수 없는 것이었다. 텔레비전이 망가진다던가 눈이 나빠진다던가 하는 온갖 부정적인 정서가 팽배했기 때문에 부모님의 관리는 엄격했다. 뭐, 결국 게임을 하는 건 마치 남의 집살이 하면서 눈치보듯 할 수밖에 없었다.

기본으로 알렉스 키드가 깔려 있는 게임기였다. 그러니까, 인터넷을 좀 뒤져본 결과 이건 ‘세가 마스터 시스템 3’였다. 그러니까, 세가의 그 유명한 메가 드라이브 이전 버전인 게임기인 셈. 알렉스 키드부터가 소닉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마스코트다. 뭐, 이런 식으로 이 책의 진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톰 칼린스키의 회사, 세가 오브 아메리카와 나도 어느 정도 접점이 있는 셈이다.

이 책은 마치 책의 주인공 세가처럼 몇 가지 영악한 지점이 있다. 첫 번째로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삼은 점이라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2인자가 1인자로 거듭나는 전형적인 왕도물의 형식을 따른다는 점이다. 2인자가 1인자를 따라잡는 이야기는 늘 나를 흥분시킨다. 그 뻔하고 결과가 눈에 선한 이야기일지라도 마치 파블로스의 개처럼 혀를 내밀고 헐떡거리게 된다. 그리고 세 번째는 따라잡고 승리하는데 그치지 않고 갑자기 나타난 새로운 2인자에게 또 다시 따라잡히는, 그리고 침체기에 들어서는 이야기까지 그려낸다는 점이다. 삼국지에서 제갈량이 죽고 난 이후의 이야기는 스포트라이트를 잘 받지 못하는 것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이야기는 별로 쓰고 싶지 않았을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 부분도 세세히 다룸으로써 이야기의 가치를 높였다. 그래서 상당히 많은 내용이었지만 굉장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책은 여러 가지 것을 경쟁의 구도로 삼아 올린다. 슈퍼 패미콤(SNES) vs 메가 드라이브(GENESIS), 마리오 vs 소닉, 규제 vs 자율, 미국 vs 일본, 미야모토 시게루 vs 나카 유지, 게임 vs 마케팅 등. 극과 극의 이야기와 프레임을 닌텐도와 세가에 덮어씌워서 보여준다. 사실 정말 완벽한 팩트에 기반한 이야기라고는 믿지 않는다.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여러가지 장식과 과장을 곁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역전의 드라마를 만들어낸 요소들은 비록 과장일지언정 분명히 들어가 있긴 할테고, 그 미묘한 현실성이 나를 매료시켰다.

요 최근 옛 명작 게임들을 몇 번씩 시도해보고 있는 것은 뉴트로 열풍 때문일수도 있겠지만, 요새 나오는 게임들, 그 화려한 그래픽과 움직임에 지겨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창 3D가 성장세에 들어서기 한발 전 쯤까지도 나는 3D에 대한 불신이 가득했다. 게임이라면 2D여야지. 그 어색한 그래픽을 즐기기 위해서 굳이 그 비싼 부두 그래픽 카드를 사야하는건가? 뭐, 나름 보수적인 아이였던 것이다. 아무튼 그랬던 감정들이 아직까지 완전히 해소되진 않았고, 그래서 나는 2D 게임을 시간이 나면 해보고 싶어하는 것일지도. 그래서 나에겐 추억도 없는 슈패 미니를 구매하고 게임을 하고 하는 것일지도. 아무튼 이렇게 옛 게임을 하고 있자니 이 책에 더 몰입이 되었던 것 같다.

결국 엔딩은 콘솔 게이머라면 누구나 알듯이 소니의 승리. 플레이스테이션은 아직까지 승승장구하고 있다. 내 콘솔 게임 경험의 시작이나 마찬가지인 플레이스테이션. 중학교 때 이혁이 집에 가서 봤던 그 화려한 3D 게임들의 모습에 눈이 돌아갔던 게 아직까지 선하다. 그 게임기가 아직 내 손에 있다. 얼마나 충격이었으면 아직까지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을까.

책, 책 자체는 마케팅에 치중한 이야기 흐름이었다. 개발 비화나 뭐 그런 것들을 좀 기대했지만 그런 부분은 비중이 크지 않았다. 아메리카 지사 중심의 이야기였으니 개발자 중심의 이야기는 쉽게 나오기 힘들었겠지. 그리고 이야기가 스토리로 진행되니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서 정신이 사나웠다는 점도 조금 괴로웠다. 안 그래도 외국인 이름은 기억하기 힘든데, 등장인물들이 와르르 쏟아지니, 원.

아무튼 내가 지향하는 ‘스토리 중심’이라는 점에서 좋았다. 독서 모임이 원래 오늘이었는데, 다음주로 밀렸네. 다음주엔 이 책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 해봐야지.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