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 Paws Essay] 지극히 개인적인 수첩 이야기
지금, 2019년, 곧 2020년을 바라보는 현재는 옛날과 기록하는 방식이 판이하게 달라졌다. 그 옛날, 내가 중학교 시절에는 기록해야겠다, 하면 지금처럼 품 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는 게 아니라 자그마한 수첩과 펜을 꺼냈다. 물론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일이 있다고 반드시 품 안에서 그 네모반듯한 걸 꺼내진 않았다. 어릴 때의 나는 머리는 나쁘면서 자기애는 굉장히 강했기 때문에, 나는 반드시 기억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고, 언제나 미래의 나는 과거의 나를 배반하기 바빴다. 기록하기 굉장히 편리해진 지금도 사실 마찬가지긴 하지만. 스마트폰을 꺼내는 대신 미래의 나를 믿는 경우가 왕왕 있지. 옛날과 다른 점은 미래의 나를 완전히 믿지 않는다는 정도이려나. 아무튼.
옛날에는 무언가를 쓰려면 반드시 필기구와 종이 비슷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지금보다는 적는 걸 더 좋아했던 그때의 나는 지금만큼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걸 좋아했고, 또 최소한으로 사치할 수 있는 무언가를 구매해서 주머니에 쑤셔넣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러니까 지금 CD와 책을 사모으는 것과 비슷했다고나 할까. 그때 나는 천원짜리 몇장을 손에 쥐고 문방구를 배회하면서 ‘어떤 귀엽고 적당한 크기의 수첩을 구매해야 하나’ 고민하는 것이 취미였다. 그 귀엽고 적당함은 지금 글의 제목처럼 지극히 개인적이었기 때문에 옮겨 적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로는 품 안에 들어가는 가장 최대한의 크기여야 했다. 품이란 교복 마이 안주머니를 말한다. 수첩이 너무 작으면 한 장에 적을 수 있는 글이 너무 작았고, 너무 크면 늘 가지고 다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지갑 정도의 사이즈에서 조금 더 크면 적당했다. 그 때는 작은 휴대폰이 한창 유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첩도 그 취향을 반영한건지 엄청난 소형도 왕왕 나왔더랬다. 지금도 나오는 수첩 형태라면, 뭐, 요새는 수첩에 완전히 신경을 끊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핑계를 대야겠지만, 적어도 아직까진 요새도 그런 작은 수첩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무튼 그런 엄청나게 작은 것부터 엽서 크기만한 것까지 수첩은 정말 다양했다. 그 중에 적당한 크기를 찾는 것만으로도 반은 구매욕에 불을 지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둘째, 줄의 간격이 최대한 좁을 것. 나는 꾹꾹 눌러서 조그맣게 쓰는 필체를 가지고 있는데, 어릴때는 더 심했다. 더군다나 지금보다 더 알아보기 힘든 필체까지 갖추어져 있었는데, 그렇게 수첩을 모았으면서 왜 필체가 좋아지지 않았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글을 쓰는 총량은 수첩과 비례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 이 수첩을 사면 꼭 끝까지 적어야지, 또 그러면서 한 수첩 안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걸 쑤셔넣기 위해 욕심을 부렸던 것이다. 그야말로 욕심. 어린 날의 치기. 라고 하기엔 또 사실 지금이라고 다르지가 않아서 재미있다. 이 책, 게임, 컴퓨터, 타블렛 PC는 꼭 잘 해봐야지, 하고 또 구매하고 만다.
셋째는 모든 물건이 그렇듯이 디자인이다. 그 때의 기준은 정말 심플했다. 너무 심플해서 디자인 철학마저 심플했다. 표지에 그림이 없거나 적을 것. 그리고 파란색 계열이 들어가 있을 것. 하지만 이건 중학생이라면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할 거라는 어른들의 몽매하고 무디고 짧은 상상력 덕분에 쉽지가 않았다. 새로운 수첩이 나올라치면 그 수첩은 알록달록, 누구나 알 만한 캐릭터들을 달고 있게 마련이었다. 정말? 이런 캐릭터가 그려진 수첩이 정말 좋은거야?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봤어도 됐을테지만, 딱히 그러진 않았던 걸 보면 나도 참 기존의 정형화된 것에서 벗어나는 걸 무서워하는 타입이었다.
디자인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 해보자면, 사실 그렇게 심플한 것을 좋아했던 이유는 수첩을 사는 이유와 맞닿아 있었다. 수첩, 그냥 아무거나 끄적이고 싶어서 사는 게 아니었다. 그 때 난 그 시절 드물지 않게 있던 판타지 소설 쓰기에 맛들린 아이였다. 하지만 지금과는 다르게 그때는 집중력과 참을성이 굉장히 부족한 시절이었다. 왜 그랬을까? 그냥 훈련이 되지 않았던 것이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심각했다. 오늘 그렇게 행동하면 하루종일 우울하게 자책할 정도로 심각했다. 그래서 내가 쓰는 글은 A4 한장을 넘기기가 힘들었고, 수첩에 쓰는 글은 더 심했다. 몇 장 쓰기가 무섭게 그 수접은 후일을 기약하며 서랍 속에 고이 파묻히는 것이었다. 그 때는 ‘글쓰기’에 얼마나 집착했던지. 고등학생때는 친구의 전자수첩에다가 글을 쓰기도 했더랬다. 그리 길게 쓸 수 없었던 건 마찬가지였지만.
넷째 조건도 있지만, 사소한 조건이다. 아니, 사실은 제일 중요한 조건이었을 거다. 지금에서야 사소하게 느껴지는 거겠지. 그건 3000원을 기준으로 구매할 것. 그 때 내 용돈이 얼마였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자전거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아마 그리 넉넉히 받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일주일에 5000원 정도일까? 아무튼 다른 친구들과 비교해도 그리 넉넉한 용돈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친구들과 뭐라도 사먹고 놀고 하면 남는 게 없는 돈이었을텐데, 그래서 수첩 구매는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랬을 것이다. 그 때 내 최고 간식꺼리가 한 봉지에 100원 하는 쌀과자였으니 말 다 했지.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수첩을 찾아내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늘 같은 문방구에서 찾아헤멨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다른 문방구는 학교 마치고 들를 이유가 없었고, 그렇게 순례를 해가면서 수첩을 살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샀던 수첩들이 내 마음을 옥죄고 있어서 그렇게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며 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의 난 정말 방탕해졌구나. 그때에 비해 참을성도, 돈도, 과소비도 늘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딱 맞는 수첩을 찾았을 때는 정말 하루종일 수첩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함부로 아무 글이나 적지 못하고 애지중지, 무슨 글을 쓸까. 어떤 완벽한 글을 쓸까. 매일같이 고민하곤 했다. 물론 글을 씀에 있어서 파국으로 치닫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완벽한 글이란 게 있다면 적어도 그 때의 내 손에서는 절대로 탄생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고민에 고민을 하다가 결국 아무 글이나 찍 싸버리고 결국 서랍행. 가끔 몇 장을 찢고 다시 쓰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그만큼 얇아진 수첩 굵기 때문에 마음이 굉장히 불편했다. 이런 류의 불편함은 마치 책 날개가 구겨지는 불편함, CD 자켓이 이염되는 불편함 정도이려나.
지금도 연습장, 기록하는 무언가들에 대한 집착이 잔물결처럼 남아있다. 그래서 디자인 소품점을 들르면 꼭 연습장이나 필기구를 얼씬거리면서 살까 말까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가지고 있는 연습장도 그래서 과소비 해버린 품족 중 하나인데, 오늘 특이하게도 수채화 할 수 있는 북카페에 가서 이 연습장의 표지를 장식했다.(내가 한 건 아니지만.) 아무튼 그런 김에 조금 옛날 생각이 나서 그 때의 이야기를 옮겨 보았다.
결국 끝까지 쓰지 못하고 다른 연습장을 사는 걸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도긴개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