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 Paws Essay] 옛날 게임과 옛날과 게임
새삼스럽지만 나는 게임 프로그래머다. 하고 많은 프로그래머 중에서 굳이 게임 프로그래머가 된 셈인데, 이 말은 사실 앞뒤가 뒤바뀐 말이다. 하고 많은 게임 개발자 중에서 게임 프로그래머를 선택했다.
어릴 때, 뭣도 모르고 뭘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던 그 무지하고 어리고 작고 동그란 머리를 한 통통한 그 아이는 그 날도 컴퓨터 학원을 마치고 가방을 밤하늘에 빠뜨릴 듯이 흔들면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을 나란히 걷는 또 다른 작은 아이. 그들은 하원길을 공유하는 영혼의 동지이자 같은 교리를 마음 속 깊이 새긴 독실한 신자였다. 신자들이니까 기도를 올리고 미래를 위해 손바닥을 마주 비볐더랬다. 굉장히 장엄한 의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 빛이 새어나오는 건물 앞에서 주차장의 주차 라인을 따라 걸으면서 노닥거린 것이 다였다. 진실로 독실했느냐 하면 날씨가 좋지 않으면 간간히 의식을 건너뛰기도 했으니 그닥 그렇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 순간만은 마치 꿈 속을 둥둥 떠다니는 듯한 기묘한 환각같았다. 그 경전의 십계명 머리말은 바로 너와 나는 어떤 게임을 만들게 될까. 나와 내 절친한, 이제는 완전히 다른 길로 떠나버린 친구의 이야기다.
아련하게 떠오르는 그 기억들 사이로 RPG 게임의 보물상자처럼 덩그러니 떨어져있는 것들이 바로 우리에게 영감을 주던 게임들이다. 하루 업무를 마치고 HP가 많이 떨어진 상태에서 그 기억들 사이에 놓여 있는 상자를 무례한 RPG 게임 주인공처럼 벌컥 열어젖혀 보면 그 기묘한 환각은 지금의 나를 다시금 덮치곤 하는데, 다들 이런 경험, 하지 않나?
왜 갑자기 이런 잡글을 또 끄적이느냐 하면, 요 최근에 용기전승 플러스를 다시 시작했거든. 게임 프로그래머라면 게임을 해야지, 하는 책임감이 내 고전 게임 머신의 전원을 눌렀고, 그렇게 어영부영 또 게임을 시작했다. 이전에도 몇 가지 게임들을 다시 해봤었는데 역시나 추억은 추억 속에 남겨둬야 아름다운 법이라는 사실만 상기했었더랬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추억을 곰씹지 않을 거냐 하면 그건 또 아니라서.
그래도 용기전승 플러스는 조금 각별하다. 참을성이 없던 게이머이던 내가 엔딩을 본, 얼마 되지 않는 게임 중에 하나니까. 난 게임 난이도나 노가다 유무에 굉장히 쉽게 좌지우지 되었었다. 그러니 이렇게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노가다 필요 없이 할 수 있는 게임은 아무튼 엔딩은 볼 수 있었다. 그 당시 대부분의 게임들은 노가다가 필수불가결이었으니, 원.
그리고 놀랍게도 이 게임은 성우 음성이 녹음되어 있다. 그 당시에는 그다지 감흥이 없었다만. 다시 하려고 보니 음성이 없는 버전 같은 건 거들떠도 보기 싫다. 이 게임을 구매했을 때도 생생하다. 학원 밑에 있던 비디오 가게를 서성이다가 게임 주얼 CD가 가득한 곳에서 한참을 고민했던 기억, 세디가 검을 휘두르고 있던 CD 자켓 이미지하며 비디오 가게 특유의 쿰쿰한 냄새들.
게임 내용이야 진부한 일본 RPG의 전형이지만, 그리고 지금 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점도 수두룩하지만(가장 도드라지는 것은 성우의 연기. 스크립트를 따로 따로 받아서 연기라도 한 것일까. 게임 상황과 전혀 어우러지지 않는 연기가 갑툭튀하기도 하고, 그 질이 좋다고는 못하겠다.) 그래도 또 플레이 하고야 마는 것이다. 어리석다, 어리석어.
그래도 내가 게임 프로그래머가 되는 데 초석이 된 것들 중 하나라는 점만은 분명하고, 그래서 인내심 훈련이라도 되는 것처럼 게임을 다루어야 할 게 뻔하지만, 그래도 이번에도 또 옛날 게임을 붙든다. 과연, 과연. 핑계 한번 거창하구만.
난 왜 이렇게 과거에 약한 걸까. 세디의 파란 머리가 옛날 그 건물 주차장에서 바라보면 불빛처럼 어른거린다. 나는 상자를 닫고 다음에 이 상자를 열 미래의 나를 준비한다. 뭐, 그런 것이다.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의 과거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