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이야기에 특별히 관심이 많은 이유로 이번에도 이런 책을 골라봤다. 공포에는 그다지 조예가 없지만, 그래도 유명한 작가는 유명한 이유가 있는 법일테니까 하는 생각으로. 늘 어떤 키워드, 어떤 솔루션이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집게 되는 이런 류의 책이지만, 역시 한 가지 정답으로 정의될 수 없는 류의 문제들이니까 늘 공중에 붕 떠있는 무언가를 한참 바라본 기분과 함께 책을 덮게 된다.

이 책은 그 유명한 스티븐 킹의 저서이다. 유명한 건 많지만 당장 생각나는 건 샤이닝, 미저리 정도이려나. 그마저도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것들이다. 난 공포에 대한 내성이 유독 약하다. 공포 영화만 봐도, 눈을 가리면서 안 보려고 기를 쓰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 공포감과 놀람을 즐기는 것 또한 아니라서 의자 시트를 꽉 붙들고 그저 다음에는 깜짝 놀라는 게 나오지 않길 기대하며 보게 된다. 그야말로 스트레스. 적당한 통증(매운맛처럼)은 즐길거리가 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매운맛도 안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아무튼 그렇게 조예가 없지만 스티븐 킹의 지명도에 끌려서 책을 구매하게 됐다. 언젠가는 꼭 읽어야지 하면서 장바구니에 담았었고, 책으로도 한참 찾아 다녔다. 리뷰에 적혀 있는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글이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지만.

실제로 책은 내가 생각한 것과 한참을 벗어난 형태를 하고 있다. 창작에 대한 어떤 체계적인 이야기를 딱딱하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에세이에서 시작해서 에세이로 끝난다. 마지막은 마치 설계한 것처럼 사고를 당한 스티븐 킹이 자신의 주변 이야기를 해주면서 끝나는데, 내 다리가 꺾인 것처럼 선명한 통증을 느꼈다. 아무튼 책을 관통하는 이야기라니. 그의 책에 대한 지론을 실물처럼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이력서라는 제목의 초반 글들은 그가 살아온 인생을 조망한다. 글을 논하는 데 작가의 인생을 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해하지만, 절반 이상 에세이라서 상당히 놀랬다. 제목의 ‘창작론’과는 결이 좀 다르지 않나? 그 부분에서 리뷰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글쓰기와 하등 관계없어 보이는 글들이라도 그 하나 하나 너무 재미있어서 몰입해서 읽게 된다.

그리고 연장통이라는 글로 넘어가면서 글 쓰는 데 필요한 연장들을 설명하는데 이건 ‘제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가 생각나는 글이었다. 내가 하는 모든 실수들을 줄줄이 읊는데 얼굴이 화끈거린다.

창작론은 상당히 인상깊다. 특히 이 글들.

플롯은 좋은 작가들의 마지막 수단이고 얼간이들의 첫 번째 선택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플롯에서 태어난 이야기는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주게 마련이다.
처음부터 이런 문제나 주제 의식을 가지고 출발하는 것은 형편없는 소설의 지름길이다. 좋은 소설은 반드시 스토리에서 출발하여 주제로 나아간다. 주제에서 출발하여 스토리로 나아가는 일은 좀처럼 없다.

둘 다 내가 가진 선입견을 와장창 깨뜨리는 지론이다. 특히 주제 의식의 경우는 이영도 님이 ‘장르 판타지는 도구다’라는 말을 반전한 이야기와 같으니까. 이영도 님은 하고 싶은 이야기(주제)가 있을 때에만 글을 쓴다고 하시니까.

그 글에서 한 문장을 가져와보자면 이런 글이다.

하지만 도구가 많다고 할 일이 생기지는 않는다. 판타지가 주제를 제공하거나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오히려 그 반대여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한국 장르 판타지 작가가 많아지길 바란다.

뭐 결론적으로 이야기와 주제를 모두 챙겨야 한다는 점은 스티븐 킹, 이영도님 둘 모두 일치하는 부분이지만 순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다. 각 사람에게 맞는 방법의 문제니까 고민해 봐야하는 지점은 확실한 듯 하다.

아무튼 여러 생각할 지점이 많았다. 게임 만들때는 영화와 소설의 중간 지점을 택해야겠다, 글을 쓸 때는 이런 저런 부분들을 조심해야겠다. 등등.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