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커피 연구소
자주 눈에 띄는 것들에 호감을 느낀다는 심리학 이야기는 꽤 유명한 이야기다. 예컨데 자유분망한 이목구비를 가진 나같은 놈도 자주 얼굴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호감을 줄 수 있다는 이론이다. 실제로 처음 새로운 직장에 갔을 때는 그렇게 무섭게만 보이던 사람들이 몇달만 지나면 다들 친근한 이미지로 탈바꿈하는 것을 몇 번이나 겪으면서 이 이론에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게 된다. 이 이론은 새로운 행동에 대한 거부감에도 적절히 적용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처음 하는 일에 마냥 무서움을 느끼고 치를 떨며 어떻게든 멀어지려 하지만, 조금만 익숙해지면 충분히 객관적으로, 하지만 지극히 주관적으로 그 일을 다룰 수 있게 된다. 그제 사서 읽기 시작한 책, ‘소설가의 일’에서 김연수님은 어떤 제안을 받자마자 “그거 제미있겠네요”라고 말할 때가 있는데 그 말의 뜻은 ‘그거 한 번도 안 해본 일이에요’라고 한다. 나와 정말 정반대의 지론이다. 처음 하는 일은 다 재미있을것이라 생각한다고 한다. 이렇게 심리학을 거꾸로 거슬러오르는 성격은 어떻게 해야 갖출 수 있을까. 부러움에 몸이 떨린다.
아무튼.
커피에 호감을 가지게 된 이유도 바로 그런 이유다. 집에 원두니 드리퍼니 그라인더니 난삽하게 펼쳐져 있으면 관심을 안 가질래야 안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임백준님의 커피 예찬론이 커피를 인식하는 게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도 빠질 수 없을 것이고. 아무튼 프로그래머는 커피지. 암. 그런 모종의 뿌듯함을 굳이 감추지 않고 마음껏 아침마다 뽐내곤 한다. 그 뿌듯함과 으쓱함 때문이다. 중독 같은 건 그런 하찮은 일로도 벌어지는 일이었던 것이다.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좋았지만, 내가 커피에 대해 아는 바는 매우 편협하다. 같이 사는 선배가 바리스타라서 이리 조금 저리 조금 주워들어서 칼리타와 하리오의 차이, 원두 굵기 차이에 따른 차이, 커피를 내리기 적당한 온도 정도는 얼추, 개미가 흘린 먼지 부스러기 만큼은 알고 있는 정도이지만, 그 정보는 한없이 옅은 갈색이다. 커피에 끊임없이 물을 부어서 한대야는 되어야 될, 그 정도의 지식이랄까. 마치 매일 숨을 쉬지만 공기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르는 것과 비슷하다. 내가 마시는 공기에는 산소가 몇퍼센트일까. 왜 이런 것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걸까.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책은 여러 가지 상식들을 과학적, 이라는 단어와 근접하게 읊어 놓았다. 각종 논문들을 인용하지만 ‘결국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하는 부분들이 적지 않다. 몇 장 넘기다 보면 그런 부분이 스프링 달린 글로브처럼 띠용 튀어나온다. 모르는 게 어떤 부분인지 알아야 알 수 있는 것이니,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초심자에게 매우 친절하다고 할 수 있겠다. 끊임없이 아는 것을 안다고 내세우는 그런 글들은 하품밖에 안 나오더란 말이다. 논문 같은 것 말이다.
사실 기술적인 부분을 많이 기대했는데, 이 책은 정말 커피, 커피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했다. 네추럴, 허니, 워시드 공법들의 차이, 와인의 테루아(원산지를 대표하는 맛을 말한다는데.)같은 것이 커피에도 있는가? 카페인은 생물의 방어기재인가? 맛이 좋은 물이 정말 좋은 커피를 추출하는가? 로스팅 속도와 화학반응의 속도의 상관관계 등등. 알면 좋고 모르면 안 좋은(?) 그런 정보들로 가득하다. 커피에 대한 잡학사전을 읽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지금도 사실 커피를 한잔 마신 상태다. 뇌가 또렷해지는 기분이 나를 컴퓨터 앞으로 확 끌어당긴다. 그래서 이렇게 줄줄 책에 대해, 커피에 대해, 나에 대해 써본다. 사실 이 책을 다 읽은 건 작년. 작년 말이었지만, 이제는 독후감을 미루는 것도 습관이 되어가나보다. 그러니까, 다 읽어버리면 다시 눈에 띄지 않으니까 어색한 사이가 된단 말이지.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