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19호실로 가다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내 공간, 나만의 개인적인 공간이 있는 게 너무 당연한 삶을 살아온지가 꽤 됐다. 꽤 됐다기보단 내 대부분의 인생을 개인적인 공간과 함께 하며 살아왔다. 어린 시절엔 그렇게 넓지도 좁지도 않은 아파트에서 살았지만 그 아파트를 쪼개서라도 나와 내 동생은 개인적인 공간을 거의 항상(잠방은 같을 때도 있었지만) 가질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부모님의 희생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맞벌이 부부에게 집 안의 공간이란 그다지 중요한 삶의 요소가 아니었을수도 있을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획득한 개인적인 공간은 마치 공기와 같아서 일부러 소중하다고 여기려 해도 그리 여기기가 여간 힘들지가 않다. 그러니까, 예컨대, 이제는 스마트폰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게 된 것과 마찬가지다.
공간은 기능으로 동작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권력으로 동작하기도 한다. 회사에서는 높은 직책일수록 넓은 개인 공간을 갖추고 있다. 그런 상하관계가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에서는 그다지 폭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겠지만, 상하관계가 흐릿한 사회라면 그건 여지없이 폭력일 것이다. 같은 학급 같은 아이들 중에 몇몇만 개인 공간을 할당받는다면 사회적으로까지 번질 심각한 폭력으로 뉴스 일면에서 다뤄질 게 뻔하다.
그러니까, 이 책의 제목이자 가장 긴 단편이었던 ‘19호실로 가다’는 공간의 기능적 측면보다는 이, 권력이라는 개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같은 집, 같은 방을 공유하고 있더라도, 게다가 그 중 하나가 훨씬 방을 오래 점유하는 사람이더라도 그것만으로는 권력관계를 명확히 할 수 없다. 공장에서 컨베이어 벨트 앞을 가장 오래 점유하는 노동자가 그 공간을 점유했다는 이유만으로 권력을 행사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권력의 상하관계란, 그 아무리 평등해 보이고 전형적이고 아름다워보이는 모습 속에서도 은연중에, 마치 완벽한 풍경, 윈도우 xp 배경화면처럼 자연스럽게 우리 사이에 녹아들어 있다.
하지만 그 자연스러운 풍경이 사실은 지옥도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어떻게 될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너무나 아름다운 천상의 세계에서 행복감에 심취하여 살았건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떻게 된 걸까, 지옥의 펄펄 끓는 용암 속에 있다. 이를테면,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던 평사원 A가, 사실 알고 보니 자신도 사장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나 다름없다. 자신이 사실은 사장이라는 걸 알게 된 A가 계속 그 자리에서 같은 일을 하고 싶을까? 하지만 주위에서는 그가 계속 원래 위치에 있기를 바란다. 관성이란 지구와 나 사이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장이라는 걸 표현하고 드러내는 A에게서 불편함을 느끼고, A 역시 그런 자신이 낯설다. 자신이 평사원임을 인정하면 세상은 너무나 쉬워지는데. 하지만 ‘알아버린’ 이상 그걸 더 이상, 도저히, 당최, 그 스탠스를 취할수가 없다.
그렇다면 결국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였다.
그랬다.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