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사회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그 인생이 쌓인 만큼, 대우를 받고 인정받았다. 살아온 세월만큼의 지식과 경험은 비록 그대로 후세에 전달할 수 없었겠지만, 그래도 그 간접경험이 조금씩이나마 쌓이고 쌓여서 더 나은 삶을, 나아가서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급변하는 21세기에서도 이 고금의 진리는 여전히 일부 살아남아있다. 예컨대 인간관계라던가, 금전관리라던가. 아무튼 변하지 않는 가치는 여전히 있고, 그것들은 결국 경험의 소치로 인생을 살아간 사람 속에 쌓여 있다.

이 책의 저자, 신예희님은 프리랜서 작가이다. 책날개에 적힌 바로는 만화를 그리고 글을 쓰고 방송을 하고 강연을 했다고 한다. 심지어 유튜브까지. 40대 프리랜서의 삶. 어떻게 보면 내 미래일수도 있을텐데. 이 책의 제목은 그런 나의 고민을 간질간질, 그래서 결국 또 지갑을 열었다. ‘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 정말 책 제목은 중요하구나.

에세이,랄까 컬럼이랄까. 검색해보면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글도 몇 묶음 나오는 걸로 추측하자면 다른 데서 연재한 글도 있는 것 같은데. 비슷한 주제들을 묶어 묶었고, 또 그것들을 묶어 낸 그런 책이다. 결과적으론 작가의 인생, 이랄까 인생론,이랄까. 살아가면서 겪은 것들을 추려 같은 길을 걸으려는 사람들에게 조심스럽게 의견을 건낸다. 나는 이랬는데. 나는 이랬어. 너는 이러지 마라… 같은 꼰대성 발언은 없다. 그냥 단지 자신의 경험을 조곤조곤, 혹은 격렬히 밝힐 뿐이다. 나는 이렇다. 유시민님은 정치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듣는 이 자신의 의견이 틀렸다고 공격하는 것처럼 느끼게 말하지 말고 단지 이런 의견이 있다- 는 뉘앙스로만 말하는 게 건강한 토론이 된다고 했다. 이 책도 비슷했다. 이런 의견이 있다. 어떻게 생각해?

글은 굉장히 가볍다. 쉽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읽는 데 오래 걸린 이유는 단지 글이 굉장히 많아서. 가볍고 쉬운 만큼 한번에 여러 글을 읽어 버리면 그만큼 그 글들이 휘발성을 띄는 것 같아 일부러 더 천천히 하나씩 읽었다. 무거운 책은 무거워서, 가벼운 책은 가벼워서. 그냥 내가 책을 읽는 속도가 느린 것 뿐인 걸지도.

신예희님의 인생을 조망하는 느낌이었다. 그녀의 주축, 프리랜서, 여행, 요리, 작가, 재태크, 재능기부, 비혼 여성, 인간 관계 등을 모두 한 번씩 찌르면서 지나간다. 특히 프리랜서로 살면서 겪는 그 부조리함을 겪으며 단단해지는 과정을 읽으면서 오우, 내가 과연 이런 과정을 견딜 수 있을까. ‘그냥 좀 해주면 안될까요’ 같은 말을 웃으면서 거절할 수 있을 것인가. 신예희님의 인생이 내 속을 통과하며 여과되어간다. 과연, 과연? 과연! 하는 과정이 그라데이션처럼 펼쳐진다.

미래는 미래, 만약 경험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 상황이 되어봐야 아는 것일테지. 다만 상상해볼 따름이다.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