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이라는 건 어떤 형태를 띠고 있건 그 사람의 창의성의 물결을 타고 밖으로 흘러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위대한 작품들은 다들 그렇게 그 예술품의 저작자가 갈겨쓴 서명을 등대 삼아 망망대해를 흘러갔을테지. 그 넓은 바다에서 어떤 한 가지 곧은 물길이 아니라, 이리 저리 허둥대는 전방위적인 물길에서 헤메면서. 아무튼간에 물길을 타고 앞으로 흘러간다는 게 중요할 것이다. 닻을 내리고 멈춰서서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하는 시간보다는 일단 가보는 것이, 그리고 이 길은 틀렸다는 걸 알게 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런 것이 작품의 길, 예술의 나아감일테지.

나는 평생을 이상한 자만감을 품고 살아왔었다. 그러니까, 나 정도면 창의적인 사람이 아닐까. 이렇게 늘 상상하며 사는데, 늘 이야기를 고민하는데, 어떻게 창의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알다가도 모를 마음이 있었다. ‘있었다’ 라는 표현이 중요하다. 그런 마음이 어느 순간 서서히 옅어져서 ‘어라? 내가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이었나?’ 싶은 생각이 문득 들기 전까지는 가슴 깊이 나의 이런 자만감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젠 전혀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데도. 요는 이전의 내가 창의적이었다는 말이 아니라, 이제는 내가 나 자신을 창의적이라고 온전히 믿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책은 창의성이라는 걸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학자들의 입을 빌려서 간접적으로 창의성이라는 게 뭔지, ‘어떻게’ 가 아니라 ‘어떤것’이 창의적인 사람인지에 포커스를 맞춰서 보여준다. 연구진들을 통해 말하니 ‘이건 아닐 거 같은데’ 같은 반론이 통하지 않는다. 전문성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설득당했다. 옛날의 나도 사실 창의적인 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의심이 솟구쳐 올랐다. 지금은 뭐, 말할 것도 없을 것이고.

서문에서는 창의적인 사람에 대해 이와 같이 묘사한다.

그들은 온갖 모순과 당혹스러운 요소들이 아무렇게나 결합된 존재 같았다.
그들은 말하자면 자기 자신과 더 친밀해지는 것 같았다. 그들은 자기 내면의 어둡고 혼란스러운 부분마저 외면하지 않고 응시하는 이들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언뜻 서로 상치되는 것으로 보이는 인지적 사고방식과 정서적 사고방식, 의도적 사고방식과 즉흥적 사고방식을 마음대로 오갈 수 있다.

다시 말해, 그들은 논리적이면서 감정적이다. 그 둘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말하자면 멀티 쓰레드 같은 방식으로 스위칭하며 그 모든 강점을 소화해낸다. 나처럼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에 유독 치우쳐진 건 온전히 창의적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이었고, 그건 나에게 청천벽력같은 말이었다. 과거의 믿음이 와르르르 굴러 떨어졌다.

창의성은 진보와 맞닿아 있다.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본다는 건, 그러니까 늘 성공을 담보할 수는 없다는 말이고 필연적으로 많은 실패를 맛보게 된다는 점. 그리고 새로운 것은 다른 사람들의 비난을 피할 수 없다는 점. 결국 그 새로운 것이 인정 받고 주류에게 승리하고 나면, 그때서야 사람들은 그것을 포용하고 떠받들어 준다는 점. 우리나라 역사를 메타포로 사용해도 참 좋을 그런 속성들이다. 얼마 전 국회의원 선거도 이에 대한 반증으로 내밀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주류로 올라섰고, 그래서 그 덕분에 메인스트림에서의 완벽한 승리를 가져갈 수 있었다는 점에서. 물론 여기에서 머물러 버리면 ‘창의성’과는 먼 것이, 그러니까 보수화 되어버리는 것이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난 어릴 때의 경험을 참 아쉬워했다. 경험 자체가 아쉬운 것이 아니라 경험하지 못한 것이 아쉬운 것이다. 교육에 관해서는 정말 참 슬플 정도로 아쉽다. 진작 내가 참여해야 할 것, 내가 누려야 할 것들에 대해 배웠다면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을텐데. 진작 다른 사람 뒷통수를 바라보며 걸어가는 법 외의 것을 배웠다면 좀 더 나은 것을 생산하고 있을텐데. 그런 면에서 다음 글은 참 충격적이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교사들이 창의적인 학생을 좋아한다고 말은 했으나, 다소 당황스럽게도 그들은 창의성을 정의할 때 '행실이 바른', '말을 잘 듣는'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 창의적인 사람들을 묘사할 때 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형용사를 제시하자 교사들은 그런 부류의 학생들을 싫어하다고 응답했다.

창의적인 사람을 역설적인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창의적인 마음에 대해 정리한 10가지도 참 역설적이다. ‘상상놀이, 열정, 공상, 고독, 직관, 경험에 대한 개방성, 마음챙김, 민감성, 역경을 기회로 바꾸기, 다르게 생각하기’ 이렇게 열 가지인데, 공상을 하면서 경험을 하고 마음챙김, 즉 재고를 하라. 두 가지를 동시에(라기보단 앞에서 말했듯이 멀티 쓰레드가 하는 방식으로) 하라고 당당히 요구한다. 일견 알겠으면서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상상 속에서 마음껏 놀면서도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라는 말인가? 이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지만.

책은 참 많은 연구 자료들을 인용하고 있어서 재밌었다. 그러니까 그냥 일반적인 자기계발서처럼 어떤 삶의 태도를 종용하고 그걸 억지 주입하려 하지 않고 담담하게 사실에 대해 늘어놓는다. 우리는 그 사실 속에 우리를 투영하며 단지 길을 찾기만 하면 됐다. 그런 무심함이 좋았다.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