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 Paws Essay] 마음을 잃어버린 기분
언제였던가 학교에서 여행을 갔을 때였다. 사실 여행이랄까, 수련회였다. 수련회와 여행을 같은 선상에 놓는다는 게 이상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제한되어 있는 지역이지만 타지를 경험한다는 점에서 여행과 비슷하다고 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본적으로 집 안에 콕 박혀있는 것을 즐기는 나로써는 밖으로 나가는 그 모든 행동이 여행과 어떻게든 맞닿아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컨데 우물 속 개구리가 우물 밖으로 나가는 것이 큰 모험담인 것처럼 말이다.
아무튼 그 여행, 아니 수련회는 특별할 것도 없는 수련회였다. 어떤 수련회였냐 하면, 사실 디테일하게 기억이 나진 않는다. 아무튼 수련회였다. 하는 어렴풋한 형상만 뭉개 뭉개 남아있을 뿐이니까. 수많은 수련회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마치 작은 군대같은 스케줄을 어떻게 저떻게 치르는 그렇고 그런 수련회, 라고 하면 다들 하나쯤은 그런 기억이 생각날테니, 그것과 꼭 닮았다, 정도로만 정리해도 되지 않을까. 특별히 기억에 남는 건 밤에 촛불을 들고 부모님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단상 위의 사회자의 말을 꼭꼭 씹었던 것 정도. 그 정도도 사실 의례히 하는 요식행위 같은 것일테지만, 그때의 나에겐 특별한 기억이 되었다.
마음을 얻는다.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타인의 마음을 취했다고 당당히 밝힐 수 있는 순간이 나에게 있었느냐고 하면 글쎄, 얼핏 떠오르는 기억조차 없는 걸 보면 아마 그런 순간은 일평생 없었지 않을까. 마음이란 게 유형의 것도 아니고 정적인 것도 아닌지라, 타인의 마음은 강물처럼 늘 나를 스쳐 지나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강을 얻었다, 김선달도 아니고 말도 안되는 일이 아닐까 싶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있다. 내가 애써 쟁취해낸 것이 아니라 사실상 억지로 쥐여진 것과 다름없는 것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귀중하고 흔하지 않은 일이다. 누구나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은 동화 속 세상처럼 그렇게 밝지만은 않았던 터라. 아무튼 돌이켜 보면 그렇다는 의미고, 사실 내가 수련회를 갔을 때는 딱히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더랬다. 그게 뭐냐면, 어떻게 보면 정말 특별하고 어떻게 보면 너무나 흔한 것. 그러니까, 엄마의 마음이었다.
생각해보면 엄마는 참 나를 소중하게 다뤘다. 얼마나 소중하게 다뤘냐면, 내가 두려워하는 그 모든 걸 나서서 해주었다. 어떻게 보면 바로 그 점 때문에 내가 조금 소심해지고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 되긴 한 것 같지만. 아무튼 그런 엄마였기 때문에 내가 수련회를 간다고 한 날에도 온 마음을 다했던 것이다. 그 마음이라는 게 내 지갑 한쪽을 채워주는 정도였지만. 얼마였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는데 그때 마음으로는 은행 문짝을 뜯어서 나에게 원하는 만큼 가져라고 한 것이나 다름 없는 금액이었다. 그러니 얼마나 든든했을까.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에 벅차올라 있는 그 심정이 아직까지 심장 한쪽에 남아있는 것만 같다.
사용할 생각이 없었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정도의 금액을 어떻게 내가 감히. 그냥 고스란히 가지고 돌아가서 엄마에게 돌려줘야겠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는 이뤄지지 않은 일이었지만.
수련회는 빠르면서 느리게 지나갔다. 소설 속 사건들은 빠르게도 지나가던데, 내 인생은 소설처럼 정수만 경험하는 게 아니었다. 지루하고 또 지루한 수련회의 낮 시간이 굼뱅이처럼 나를 통과하고 난 후.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예상하고 있을 바로 그 일이 일어났다. 주머니가 뭔가 가벼워진 것을 직감한 것이다. 한참을, 정말 믿어지지 않아서 정말 오랫동안 나의 몸 구석구석, 심지어 양말 바닥까지 확인할 정도로 뒤졌다. 아마 내가 갓 태어났을 때 엄마가 나를 뜯어본 것보다 더 꼼꼼히 나를 뜯어봤다고 장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내 몸을 떠난 것이 내 몸에 있을리가 없었다. 내 몸 한켠에 남아있는 것은 낙담 뿐이었다.
낙담한 그때의 그 기분이란. 내 몸에 추를 달고 물 속에 가라앉고 있는 기분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잘 쉬어지지 않는 숨을 몰아쉬면서 나를 통과하는 사건들을 무시한 채 오로지 바닥, 바닥만 주시했다. 다시 찾을지도 모른다는 헛된 기대를 안고. 떠난 게 그렇게 쉽게 찾아진다면, 내가 과거를 그리워하고 추억할 일도 없을 것이다. 기대는 절망으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촛불을 든 나. 나는 엉엉 울었다. 돈을 잃어버린 내가 싫고 미웠고, 증오스러웠다. 엄마가 나에게 돈을 쥐여주던 순간만이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복기되고 있었다. 엄마의 얼굴이 페이드인, 끝없이 페이드인. 그리고 촛불처럼 일렁였다.
그러니까 그건 엄마의 마음이었다. 그걸 잃어버린 나는 천하의 불효자였고.
마음을 잃어버린 기분이란 바로 그런 것일테지.
나를 적시고 지나가는 마음 하나 하나가 모두 나에게 그런 의미, 그 정도의 무게감을 지니고 있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잃어버린 마음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울적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아무튼간에 그것들도 무게를 가지고 있을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