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초년생일 때였다. 혼자서 깔짝거리는 걸 좋아하고 내 의견을 크게 피력하지 못하는 소심한 성격의 나에게 그닥 별로 경험도 없는 그 ‘협력’이라는 단어는 그다지 감동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뭐랄까,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냐? 이 세상에서 그냥 하면 되는 건 없었다는 걸 나중이 되어서야 알게 되지만, 뭐 어떠랴. 사회초년생에게 치기도 없으면 어쩌겠나, 싶은 생각. 결국 크게 피를 흘리면서, 그야말로 피철갑이 되어서 그 ‘협력’이라는 걸 알아가게 된다. 아직까지 그 과정에 있어서 지금도 피를 뿜뿜 흘리면서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

그리고 선천적인 그런 성격 탓에 난 개인적으로 혼자 깔짝이는 것을 좋아한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도, 뽐내는 것도, 그 어떤 표현도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회피해버리는 것이다. 회피라는 게 싸움에서나 멋들어진 것이니 실생활에서는 하등 쓰잘데기 없는 능력이다. 세상살이가 내가 원하는 일만 하고 살 순 없는 법. 하기 싫은 일들이 짐처럼 내 마음의 방에 쌓이는데 그걸 슬쩍 안보이는 것에 밀어두는 것일 뿐이니까. 아무튼 밀어둘 뿐이니까 언젠가는 끄집어내서 처리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요는 다시 처리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하기 싫은 일이든 무엇이든.

아무튼 다시 사회초년생일때의 나로 돌아가서 이야기해보자면. ‘협력’이라는 걸 쉽게 생각하던 터라 애자일, 익스트림 프로그래밍, 스크럼 같은 게 사실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협력과 커뮤니케이션이 그 중심에 있는 방법론이라니, 누워서 떡먹기 아냐? 실상은 누워서 떡먹기가 그리 수월한 행동은 아니라고 하던데. 뭐, 그런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적나라하게 협업의 어려움과, 일반적으로 협업을 등한시하고 협업 이외의 것으로 개선하려 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을 체계적으로 나열하는 책은 그대로 나에 대한 비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초년생과는 다르게 지금은 협업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고 지치는 일인지, 당장 눈 앞에 있는 일을 처리하는 것과 협업하는 것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면서 일을 진행하는 것이 얼마나 나의 정신을 사납게 만드는 일인지 너무 뼈저리게 잘 알고 있다.

체계적으로 나를 까는 상대는 밉지만, 그냥 무비판적으로 미워할 수밖에 없다. 나의 논리는 없으니까. 결국 받아들이는 것밖에 남지 않는다. 회피하면 결국 짐이 되어 남는다. 받아들여야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글에서는 다음처럼 이야기한다.

쉽게 말해, 도구 부분에서 상당한 개선을 이뤄내면 비용 면에서 세 배 정도 개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관리 부분에서 상당한 개선을 이뤄내면 비용 면에서 67배 정도의 개선을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개선을 시작하는 팀이 선뜻 관리 부분을 바꾸긴 힘들 것이다. 애자일 방법론을 가져온다손 쳐도, 그걸 기존 워터폴 모델에 기묘하게 섞어버려서 관성적인 구조에 가까운 기형이 되어버리기 십상이다.(나도 겪어본 일이다.) 즉 많은 사람들이 협업에 대해 굉장히 꺼림칙하게 여기고 개인에게 집중한 상태에서 업무를 보는 게 즐겁고 유쾌하다는 뜻일 것이다. 기존 워터폴 방식은 아래로 할당하고 그것에 대한 피드백을 필수로 요구하진 않으니까 역시나 업무를 ‘개인적’으로 처리하는 셈이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그리고 특출나길 원한다면 그걸 벗어나는 일을 아무리 힘들더라도 해나갈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내가 늘 즐겨 하듯이 회피해버리고 안보이는 것으로 밀어버리고 살면 언젠가는 그 댓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다. 여러가지를 잘하고 싶다면, 가장 싫어하는 것부터 개선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하자. 협업. 업무, 심지어 공부까지도.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