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지성만이 무기다
이번에도 또 다 읽고 미뤄뒀던 책에 대해서다.
지성만이 무기다. 책 이름이다. 그렇다면 방패는? 갑옷은? 전장은 무기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그 많은 구성요소들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당연한 의문이 떠오르지만 사실 전장을 나설 때 그 흐름과 기세를 만드는 것이 무기인 것만은 분명할 것이다. 무기가 없다면 전쟁은 성립하지 않을테니까. 이를테면 삶이라는 전쟁에서 가장 초석이 되는 무기는 지성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방패, 갑옷, 진형 등등의 것들은 그 위에 쌓아올리는 다음 스탭일테고. 무기 없이 단단한 전사가 전장에서 할 수 있는 건 없다.
책은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지성을 갖추기 위한 스탭을 찬찬히 밟아 나간다. 볼링을 칠 때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스탭인 것처럼, 지성을 갖추기 위한 스탭, 즉 공부에 대해 차근차근히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그 결과 책은 반절 이상이 공부와 사고방식 등에 대한 이야기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저자의 공부에 대한 가치관은 결국 책으로 귀결되고 있었으므로 이 책은 결국 독서에 대한 내용이 거의 대부분을 이루고야 만다. 지성이 그대로 책이라는 사물로 이어지는 건 어떻게 보면 구시대적 사고방식일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사고의 향상이 책으로만 이루어진다면, 활자를 읽지 않는 현대 사회의 수준은 말로 설명하지 못할 정도로 처참할 것이 분명하니까. 책 외의 방법들, 예컨대 영상, 게임, 커뮤니티 활동, 나아가 이런 간접적 경험이 아니라 직접적인 경험들로도 지성은 쌓일 것이다. 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이냐고 나에게 개인적인 의견을 묻는다면 결국 난 백기를 들고 말 거다. 독서가 가장 효과적일 게 당연하잖아, 참지 못하고 불쑥 말해버릴 거다. 그 이유를 물을 때를 대비해서 미리 이렇게 저자의 글을 인용한다.
책을 읽음으로써 사람이 변하고, 인격이 변용되는 이유는 그 책에 의해 인식, 즉 사물을 보는 방식이 크게 변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인식이 전혀 변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책에서 지식이나 줄거리 같은 표면적인 쓰레기만을 퍼올리기 때문일 것이다.
요는 비판적인 읽기다. 사고의 흐름이 빠른 동영상, 게임 같은 것은 이를테면 줄거리 요약과도 흡사하게 동작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명작의 줄거리 요약을 읽어도 뭔가 공허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읽기 방식으로는 개인적인 체험, 즉 자신의 머리를 사용한 간파가 완전히 누락되기 때문이다.
책은 비록 제목과는 꽤나 동떨어진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그래도 좋았다. 지성 = 책 이라는 이상한 공식에 나도 모르게 찬성하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그런데 결국 이렇게 되면 무기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게 되지 않나? 이를테면 무기를 갈고 닦는 숫돌에 대한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은 셈이다. 그럼 제목은 ‘지성만이 무기다’가 아니라 ‘지성만이 무기인데 책이라는 숫돌로 갈아라’ 같은 긴 제목이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재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