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전선이란, 아마도 가장 치열한 곳. 그렇다면, 글쓰기의 최전선이란 얼마나 치열한 현장을 말하는 것일까. 나는 정말 ‘치열하게’ 글을 쓰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이 책을 만났을 때를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저저번주 쯤이었나. 시간이 허락하면 서성이는 서점들이 몇 군데 있는데, 그 중 아마도 가장 큰 곳에 들었다. 합정에 있는 교보문고였다. 이 교보문고는 구성이 조금 특이하게 되어 있는데, 그건 바로 공간이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점이다. 한 곳은 음악, 예술 등 어떻게 보면 문학과는 다른 방향을 지향하는 것들이 몰려 있고, 나머지 한 곳은 한눈에도 딱 일반적인 서점이구나 싶은 형태인데, 그 중 일반적인 쪽으로 들어서면 다른 서점들처럼,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 그리고 MD가 구성한 몇몇 가판대들이 시선을 끈다. 아마 이 한 방으로 구매를 유도하는 것이겠지 싶은 그런 구성이다. 그리고 그 날은 그 한 방이 유효타로 들어간 앵련이가 저번에 읽었다면서 추천해주는 책, 그러니까 ‘글쓰기의 최전선’을 구매하게 되었다. ‘재미있다’며 눈을 반짝이는데,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요즘들어 글쓰기에 좀 더 진지하게 임해볼까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렇기에 최근 내 글쓰기의 한계에 좌절하고 있었다. 글이란 건 그냥 엉덩이를 붙이고 많이 쓰면 느는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내 글쓰기는 마치 러닝 머신 위를 달리는 듯,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누군가 ‘평생 숨 쉬지만, 그렇다고 숨쉬기의 달인이 되진 않는다’고 했는데, 그야말로 내 이야기였던 것이다. 뭐, 그런 생각을 하던 차였으니 새로운 글쓰기 책이 자극이 되겠거니 하는 기대를 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글쓰기 책이라면 지금까지 김연수님의 책도, 스티븐 킹의 책도 읽었지만 그와는 또 다른 특별한 테이스트가 가득 담긴 책이었다. 이 책은 ‘글쓰기의 최전선’이라는 독서 모임을 만드는 경위를 설명하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를 끌고 가면서 어떤 것들을 알아가게 되었는지에 대해 담담히 기록한다.

'글쓰기의 최전선'은 왜 그 직업을 욕망하는지, 밤이고 낮이고 쓰는 글이 누구의 이익에 복무하는지, 잘 산다는 기준이 무엇인지 등등 자기 생각과 욕망을 글로 풀어내며 나를 알아가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은유님의 연마 방식, 그러니까 사람들과의 소통과, 그로 인해 얻은 여러 인사이트들이 마치 기차놀이라도 하듯 늘어서 있었다. 문학, 시, 철학, 르포 등 은유님의 관심사는 울타리들을 쉽게 타넘었고, 글쓰기의 최전선 모임의 학인들(은유님이 그렇게 표현한다.) 역시 그녀를 따라 줄줄이 울타리를 타넘었다. 예컨대, 은유님이 시 읽기로 수업을 하면 시가 어렵다고만 생각하던 학인들 역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 읽기를 시작해야 한다. 마냥 어렵다고 불평하던 학인들도 결국에는 시를 외우는 과정까지 완벽히 수료하며 새로운 자신을 마주한다. 이렇듯, 높게만 느껴지는 벽은 외부의 작은 자극으로도 손쉽게 무너진다. 이를테면 베를린 장벽도 몇몇이 장벽을 무리하게 넘기 시작하자 다른 사람들도 거기에 가담하고, 그 기세를 도저히 막을 수 없어서 무너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도, 울타리 같은 것에 막혀서 그냥 가만히 보고만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 만다.

책은 강렬하게, 아니 통렬하게 글쓰기가 최전선임을, 그리고 글쓰기로 최전선에 나아가야 함을 피력한다.

약자는 달리 약자가 아니다. 자기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갖지 못할 때 누구나 약자다. 노동자의 심정을 자본가가, 장애인의 입장을 비장애인이, 동성애자의 아픔을 이성애자가 대신 말할 수 있고, 말한다고 해도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고착시킬 뿐이다.
‘왜’가 없는 자기계발 담론을 내면화한 학인을 마주하는 일은 더러 당혹감을 안겨주었다.

좋았던 건, 은유님의 ‘보통 사람’ 같은 점이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사람같은 느낌을 주지만, 어디에서나 보긴 힘든 행동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희망적이다. 글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글로써 증명했으니까. 마지막 부록의 학인들의 글을 읽고 나면 희망적임은 배가 된다. 과연 내가 인터뷰를 할 수 있을까는 차치하고서라도..

그러니까,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전선에 나서서 치열하게 펜을 치켜들고 문장을 들이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