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어릴 때만 해도 지금 나이가 되면 당연히 가지게 되는 것이 바로 집인 줄 알았다. 아파트에 입주해서 사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고, 드라마 등지에서 자주 나오는 으리으리한 저택 같은 곳에서 살기 위해서, 그러려고 학원을 가고 시험을 치르고 순위를 매기는 줄만 알았다. 그야 그럴것이, 그 시절, 나는 물론이고 내 친구들도 모두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으니까. 아파트에서 사는 것 정도가 디폴트로 셋팅되어 있었던 것이다. 방 세개 정도에 거실이 있고, 거기엔 커다란 TV가 있는 그런 집.

하지만 어느덧 서른이 넘은 나는 아직까지 그런 집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다. 고향이 경주이고, 지금 사는 곳이 서울이라는 어찌 보면 무지막지한 차이가 있긴 하지만, 만약 그 차이가 없었더라면 지금 집을 가지고 있었을까, 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달린다.

그렇지만 사회는 나에게 집을 사라고 은연중에 강요한다. 집값이 널뛰기 하는 걸 잡겠다고 정부가 공공연히 떠드는 것, 전세 구하는 것조차 하늘에 별따기라 월세를 전전하며 2년마다 계약을 갱신하거나 집을 옮겨야 하는 것.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집을 사는 게 가장 가까운 목표가 되어 버렸다. 어릴 때의 꿈이 무색할 정도로 허망하고 초라한 꿈이지만, 그 꿈이 초라하다고? 하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넘치는 곳이 바로 이 곳, 이 시절인 것이다.

소명은 미니멀리즘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아마도) 월세 원룸방을 어떻게든 꾸며보기 위해서 옛날 옷가지를 채경에게 주거나, 버리거나, 보류하거나 하고 필요 없는 물건을 받지 않기 위해 소유욕을 꾹 누르기도 하면서. 필요한 것만 딱딱 남긴 방으로 몇 걸음이나 나아가지만, 인터넷에서 보던 그럴듯한 방이 되긴 요원해보인다. 애초에 원룸과 효율을 분리할 수 없는 탓일 것이다.

소명은 비어있는 공간이야말로 그 자체로 인테리어라는 말을 다시금 절감했다.

그녀는 곧 결혼하는 채경과 모든 면에서 반대된다. 연봉도 낮고, 집도 원룸방, 결혼도 남일일 뿐. 소명은 그 무난하고 평범한 길을 걸어가는 채경의 모습에서 박탈감 같은 걸 느꼈을까? 하지만 채경의 길이 마냥 행복한 꽃길이 아님은 채경이 짧은 드레스를 입을까 말까 고민하는 부분에서 은연중에 드러난다.

완주는 휴대폰을 집어 들더니 돌연 박수를 짝 쳤다. "야, 너 채경이 드레스 봤어? 걔 너무 나갔던데 너도 좀 말려."

완주는 모든 면에서 평범한 그 삶에서 단 하나, 원하는 튀는 드레스를 입었다는 것만으로도 질책한다. 평범한 길을 간다는 건, 차선을 모두 포기한다는 것과 동일한 말이었다.

그 후. 미니멀리즘을 실현하고 난 후, 자신을 칭찬하기 위해 집으로 초대하게 되는 인터넷에서 알게 된 남자, 동우는 소명에게 발아된 씨앗을 주게 되는데, 그 새싹이 시들해졌을 때 솔루션을 넌지시 제시해준다.

"의자는 도울 뿐, 중요한 건 화분 옆에 앉아서 멍 때리고 있는 거예요." "그러고 얼마나 있는데요?" "물 준 게 완전히 마를 때까지요. 저는 사실 그 맛에 식물을 키우거든요."
"무슨 생각해요?" 동우가 침묵을 깨며 소근거렸다. "아무것도, 아무 생각도 안해요." 소명이 말했다.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이제부터 정말로 머릿속을 텅 비워볼 참이었다. 자신에게 그러한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 것이었는지 소명은 지금 막 깨달았다.

미니멀리즘, 과거든 욕심이든 무엇이든 버리기 위해서는 머릿속부터 버려야 하는 모양이다. 어떤 것이든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다. 하지만, 씨앗이 발아한 소명은, 아마 잘 할 수 있겠지.

나도 잘 할 수 있을거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집안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