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정말 신묘하다. 똑같이 자음과 모음을 합쳐서 만든 것들인데 왜 이렇게나 다른지. 무척 진중하고 강렬해서 나의 마음을 찢어놓는 글도 있는 반면, 이런 글, 그러니까 고운 모래를 두 손 가득 쥐고 사르르 뿌리는 듯한 글도 있는 것이다. 나는 매번 이 글에는 이런 점을 감명받고, 저 글에는 저런 점을 감명받지만, 그런 감명을 글 속으로 녹아내려 하면 아무래도 그 맛이 나지가 않는다. 얼핏 보고 따라한 어설픈 요리의 폭망한 맛이 그대로 배어 나오고 만다. 이렇게 나를 이렇게 갈대로 만드는 글들은 세상에 차고도 넘친다.

이번 책은 표지의 레트로 풍 남녀의 사진에 끌려서 내용도 별로 확인하지 않고 구매한 책이다. 딱 봐도 에세이집의 느낌이 물씬 풍겼는데, 사실 감성에 호소하는 글은 잘 사지 않는 편이라서 이번에는 어떨까, 내 입맛에는 영 별로지 않을까, 그래도 역시 어떨까 하는 마음이 없잖아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음, 나쁘지 않았다. 내 감성에 가까운 글은 이런 글이 아닐까 하는 흔들림이 있었다는 건, 나쁘지 않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지도 모르겠지만.

책 이름을 장식하고 있는 ‘20킬로그램의 삶’은 이 책의 첫 번째를 장식하고 있는 에세이의 제목이었다. 글은 초장부터 의문을 만들어서 서서히 나도 모르게 몰입하게 하는 게 좋은데, 그 역할을 맡기기에 가장 최적의 상대가 바로 제목일 것이다. 이 제목은 그 역할을 매우 매우 충실히 해내고 있다. 20킬로그램이라니, 대체 뭐의 무게일까. 사람?이라기엔 너무 가벼운데, 어린 아이일까? 그럼 어릴 때 이야기? 등의 생각을 하면서 글을 읽어나가기 시작하지만, 그 모든 상투적인 추리가 완전히 틀렸음을 금방 깨닫게 된다. 책은 감성적인 사진과(아마 작가님이 직접 촬영한 사진) 그리 길지 않은 글로 구성되어 있어서 장수가 많이 넘어갔더라도, 사실 글 하나를 다 읽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글들에서 왠지 모르게 오래되고 따뜻한 감성이 물씬 떠오르는데 작가님이 촬영한 사진은 그 감성에 시각적인 요소를 결합한다. 오래되지 않았지만 오래된 이야기를 하는 글들이라는 느낌이었다. 그 어린 시절만으로 레트로를 복각해야 한다는 나의 생각을 꾸준히 파훼시켜 나간다. 과거란, 바로 몇 시간, 몇 초 전도 과거였던 것이다.

특히 인상 깊었던 글은 813.32촌51의 비밀,로 도서관에 있던 무라카미 하루키님의 소설,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 구판이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치며 마치 인터넷 자유 게시판과 같은 꼴이 되어있는 걸 목격한 일에 대한 글로, 인터넷의 편리함으로는 닿을 수 없는 옛날의 감성을 소름돋게 잘 표현한 글이었다.

1980년대에서 90년대를 거쳐 2000년대 것도 보였다. 누군가 내게 쓴 편지를 읽듯 하나씩 읽었다.

거기에 그 증거자료처럼 그 책의 글들을 사진으로까지 찍어 두었으니, 마음이 동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글이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 마음의 동함이 늘 역동적이고 전투적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잔잔하게 고요하게 내려앉는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재미있었다.